최근 시중은행이 비대면 모바일 대출 상품을 우후죽순 쏟아내고 있지만, 대출 심사 단계부터 먹통이 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대면 대출에 필요한 ‘데이터 스크래핑’을 두고 시중은행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간 불편한 눈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비대면 대출의 핵심인 데이터 스크래핑 기술에 문제가 발생했지만, 양 기관은 데이터 스크래핑으로 인한 트래픽 과다 문제에 명쾌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데이터 스크래핑은 말 그대로 데이터를 스크랩(Scrap), 긁어온다는 의미다. 고객이 자신의 인증 정보를 한 번만 제공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국세청·대법원 및 금융기관 등의 시스템에 접속해 여러 곳에 퍼져있는 고객 정보를 취합하는 기술이다. 현재 19개 시중은행을 포함해 카드·증권·보험·저축은행·상호금융 등 140개 금융사와 500개가 넘는 공공·유통기관이 스크래핑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고객의 신용·체크카드 정보를 간편하게 정리해주는 뱅크샐러드나 브로컬리 앱도 데이터 스크래핑 기술 덕분이다. 고객이 해당 앱에 공인인증서를 한 번만 등록하면, 은행 계좌로부터 결제 정보가 스크래핑 돼 앱으로 넘어온다.
이런 스크래핑 요청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 스크래핑을 당하는 사이트는 트래픽 한계로 먹통이 될 확률이 높다. 실제로 H은행이 지난달 신규 대출 상품을 출시한 당일, 신청자가 과하게 몰리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이트가 일시적으로 멈췄고 대출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은행권은 대출 심사 시 스크래핑 오류에 따른 고객 불만에 이러다 할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이트의 트래픽 한계로 인한 오류에 은행이 자체적으로 취할 수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출 심사를 이유로 공공기관에 트래픽 증설을 요구할 명분도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계속 증가하는 스크래핑으로 사이트 내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 방안을 고민 중이다. 하지만 공단 내부에서는 금융기관의 사적 이익을 위한 대출심사 때문에 공단 내 트래픽을 증설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반발도 나온다.
공단 관계자는 “데이터를 스크래핑 해오는 사이트가 사회보험 포털이라는 곳인데 연금·근로·공단 등 여러 기금 사이트가 동시에 운영되고 있어, 우리가 독단적으로 트래픽 증설을 결정할 수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진 않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스크래핑 사용량이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기관들과 해법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