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통장에 현금 10억 원이 있다.(Yes=1, No=0)
②부모님이 10억 원 쯤은 내일이라도 쏴준다.(Yes=1, No=0)
③정규직 은행원(한국은행 포함)이다.(Yes=1, No=0)
④곧 로또 된다는 조상님의 궁예가 있었다.(Yes=1, No=0)
⑤청와대 대변인의 아내다.(Yes=1, No=0)
비자발적 무주택자이면서 위 다섯 가지 항목에서 1점도 얻지 못했다면 당분간, 아니 이번 생은 글렀다.하지만 내 집 마련 의지는 있는데 지금 샀다가 집값 떨어질까 망설이는 중이라면 용기를 낼 것을 권한다. 정부가 해를 가려보겠다며 펼쳐든 손바닥 밑에 모여 바글대는 폭락론자들의 악다구니를 벗어나 고개를 조금만 돌려 보자. 어느새 ‘똘똘한 한 채’ 집어치우고 ‘줍줍’에 뛰어든 부자들의 아비규환이 한창이다.
미분양 아파트 청약이 무순위 온라인 접수 방식으로 바뀌면서 요즘 부자들은 만사 제쳐두고 집을 사느라 바쁘다. 매장 문 열자마자 몰려들어 서로 내꺼라며 몸싸움 벌이는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현장을 연상시킬 정도다.
‘집값 띄워보려는 기레기의 개수작’이라 침 뱉어도 할 수 없다. 욕 많이 먹고 오래오래 살 테니 “미분양 속출”, “집값 하락 공포”를 위안삼아 짧고 굵게 살다 가시라.
과거와 같은 견본주택 줄서기나 떳다방 현수막은 없다. 각 건설사들이 따로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일괄적으로, 그것도 온라인으로만 신청을 받으니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와 닿을 리 없다. 숫자를 봐도 실감이 날지는 사실 의문이다.
조짐은 연초에 이미 감지됐다. 한 언론사가 2월 분양한 서울 광진구 화양동 어떤 아파트의 예비당첨자 529명을 전수 조사했더니 1980년 이후 출생한 20~30대가 전체의 81.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아파트 분양가는 9억6000만원부터 시작한다. 9억 원이 넘으니 중도금 대출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그런데도 500명이 넘는 2030세대가 분양을 신청했다. 대충 계산해도 6억 원 정도는 현금으로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온라인 무순위청약 제도가 본격화된 4월부터는 난리가 났다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 3주택재개발구역에 공급하는 한 아파트의 미계약분 174가구 무순위 청약에는 5835명이 몰려들었다. 전용 48㎡가 7가구 모집에 941건이 접수돼 134.43대1로 가장 높았고 18가구 모집에 1970명이 몰린 59㎡A가 109.44대1로 뒤를 이었다. 분양가가 9억원이 넘어 중도금 대출이 안되는 전용 114㎡도 4가구 모집에 129건이 접수돼 31.2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무순위 청약의 평균경쟁률은 33.53대1. 2월에 있었던 일반청약 평균 경쟁률 11.14대 1의 3배에 달한다.
이런 괴이한 현상은 도대체 무슨 의미을 담고 있을까. 무순위 청약은 사실상 자격조건이 없다. 청약통장도, 청약가점도 필요 없다. 유주택자이건 다주택자이건 그저 19세 이상 성인이면 된다. 당첨된 뒤에도 돈이 부족하거나 마음이 바뀔 경우 쿨하게 안사면 그만이다. 대신 대출은 꿈도 꿀 수 없다. 오직 현금박치기.
반면 일반청약은 통장이 있어야 하고, 우선순위 가점 높은 무주택자 이어야한다. 분양가가 9억 원을 넘으면 역시 대출은 없다. 대신 당첨된 뒤 돈이 부족하거나 마음이 바뀌면 불벼락이 떨어진다. 향후 5년간 일반청약 시장에서 쫓겨난다.
이쯤 되면 눈치채야 한다. 서울에서 분양가 9억이하 아파트 찾으면 로또다. 그리고 100% 현금과 “너로 정했어”라는 200% 확신이 없다면 청약통장은 절대 쓰면 안된다.
집을 사고 싶은데 청약통장 있고, 현금 10억 있으며, 확신 있는 사람 일반청약 하면 된다. 집을 사고 싶은데 이미 집이 있으며, 현금 10억 있고, 안되면 그만인 사람 무순위 청약에 다 모여있다.
집을 사고 싶은데 아무 것도 없다면 발로 뛰어야 한다. 클릭질 몇 번과 집 근처, 직장 근처 은행 몇 군데 대출문의 전화했다 퇴짜 맞은 노력이 전부라면 이번 생은 그냥 살아야 한다. 부동산은 불로소득이니 나도 게으르게 돈 벌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번 생은 2년 마다 부지런히 이삿짐 싸면서 살아야 한다.
대출이 완전히 차단됐다는데 매달 나오는 금융당국의 주택담보대출 통계는 증가일로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3월에만 2조8000억 원 늘었다. 1년 전인 2018년 3월 증가액에서 한 푼도 줄지 않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버팀목 전세대출’ 취급액 5000억원이 기금이 아닌 은행 재원으로 취급돼 포함됐다고 하니 이를 빼면 2조5000억 원. 여기에 이사철을 맞아 주택 대출에 포함되는 은행권 전세 자금 대출이 1조9000억원 늘어난 영향이라는 금융당국의 설명을 반영해도 누군가 집을 사느라 6000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는 뜻이 된다. 누구 인가? 누가 안된다는 대출을 받았는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