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안에 금리인하를 할까요?” 몇 주간 채권시장 참여자들로부터 꽤 자주들은 말이다.
장단기금리 역전이 미국에 이어 한국에까지 이어지자 최근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금리인하 기대감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장단기금리 역전이 발생할 경우 경기침체가 발생해왔다는 소위 R(리세션·recession)의 공포가 빌미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채권시장에서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가 한때 국고채 5년물까지 한은 기준금리(1.75%)를 밑돌았다. 국고채 3년물은 지난달 27일부터 현재까지 20여일간 역전 상황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다만 이번 장단기금리 역전이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다. 실제 국제 투자은행(IB)들의 분석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 또한 최근 세계경제가 올 하반기부터 둔화하겠지만 내년 하반기이후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IMF는 세계경제 성장률이 올해 3.3%에서 내년 3.6%로 상승할 것으로 봤다. 한국에 대해서도 올해 전망은 기존과 같은 2.6%를 유지했고, 내년에는 2.8%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 뉴욕사무소 역시 최근 미국 리치몬드 연준(Fed)의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를 인용해 기간프리미엄(텀프리미엄·term premium) 하락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장단기금리 역전이 자주 발생하는 원인이라고 밝힌바 있다. 기간프리미엄이란 장기채권을 보유할 경우 요구되는 추가 수익률을 뜻한다.
이에 따라 한은이 연내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는 과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갑작스레 위기가 발생하면 모를까 웬만한 저성장 상황이라면 다섯 가지 이유에서 한은이 인하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다. 아울러 한은의 입장은 여전히 인하보단 인상쪽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반면 연준 통화정책에 대해 시장과 한은간 온도차는 여전해 보인다. 3월 FOMC 이후 시장에서는 연준의 금리인상 사이클이 끝났다고 보는 반면, 한은은 내년 점도표상 한 번의 금리인상이 남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1.75%)과 연준(2.50%)간 기준금리는 이미 75bp(1bp=0.01%포인트) 역전돼 있다. 앞서 밝혔듯 자본유출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역전 폭을 확대할 금리인하를 한은이 선제적으로 하기 어렵다. 실제 한은이 통화정책을 금리로 변경한 1999년 이후를 보면 사실상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인하를 한 때는 없었다. 2012년 한은의 금리인하가 있지만 당시는 미국이 더 이상 금리인하를 할 수 없던 제로금리 기간이었다.
한은 금리인상의 이유가 됐던 금융불균형도 여전하다. 최근 한은이 발표한 자금순환자료를 보면 통상 가계로 지칭하는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부채가 지난해말 기준 1789조8879억 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규모(1782조2689억 원)를 사상 처음으로 뛰어넘은(100.4%)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해 3분기말 기준 한국의 GDP대비 가계부채 증가세가 0.9%포인트로 43개국 중 중국(1.2%포인트) 다음으로 가장 빠르다고 밝힌바 있다.
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존 매파(통화긴축)적 입장에서 한 발짝 중립으로 후퇴한 고승범·임지원 위원 역시 여전히 금융불균형을 우려하는 중이다. 2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고승범 추정 위원은 “금융불균형 문제가 확실히 해소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부동산가격 및 가계부채 증가 추이를 당분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고, 임지원 추정 위원도 “금융불균형 누적 위험은 다소 완화되고 있으나 이러한 흐름이 기조적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성장률 하향조정해도 잠재성장 수준..금리인하로 물가 올리기 어려워 = 18일로 예정된 4월 금통위의 최대 관심사는 한은이 기존 2.6%로 예상했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할지 여부다. 이투데이가 12일 증권사 채권연구원 1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명은 기존 전망치를 유지할 것으로 봤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하향조정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경제상황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가격 하락 등으로 수출 증가율은 넉달연속 마이너스(전년동월대비 기준, 3월 -8.2%)를 기록 중이고, 경기 동행 및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각각 2월 98.7포인트, 98.3포인트)도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이래 최저치다.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우고 미래 먹거리를 보장하는 설비투자도 저조하다. 설비투자 선행지표인 일반기계 수입물량지수 증가세(2월 -37.5%)는 IMF 외환위기(1998년) 이후 가장 낮다.
다만 한은은 올 상반기 중 잠재성장률을 새로 추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주열 총재는 이미 2%대 후반인 잠재성장률 수준을 2%대 중반 내지는 중후반 수준까지 끌어내릴 것임을 공식화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한은의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조정되더라도 한은은 잠재성장률 수준 내지는 잠재성장률 수준을 살짝 밑도는 정도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물가(CPI)가 3개월 연속 0%대 증가세(3월 기준 전년동월비 0.4%)에 머물고 있다. 일각에서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다만 금리인하로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한은이 기준금리를 3.25%에서 1.25%까지 인하했지만, 같은 기간 CPI는 되레 2%대 중반에서 0%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이를 두고 금통위원 중 가장 비둘기파(통화완화)인 조동철 위원은 더 공격적으로 금리인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2016년 7월 미 세인트루이스 연은은 ‘네오 피셔리즘(Neo-Fisherism)’ 보고서를 통해 정책금리를 인상해야 오히려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저금리 상황에서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중에 돈을 푸는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교과서적인 판단일 수 있다. 실제 이미 시중에는 돈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2월 기준 본원통화는 177조6043억 원(원계열 평잔 기준, 이하 동일)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광의통화(M2)와 금융기관유동성(Lf)도 각각 2730조4819억 원과 3850조1893억 원으로 역시 사상 최대치다.
반면 돈의 유통속도를 의미하는 통화승수는 15.37배로 1996년 이래 최저치다. 돈을 풀어봐야 부동산이나 주식시장 등 일부 자산시장에나 영향을 미칠뿐 실물경제에 대한 효과는 뚝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추경과 인상도 폴리시믹스, 통방 완화정도의 추가조정 문구 여전 = 정부는 최대 7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한 추경을 편성함에 따라 한은도 금리인하로 화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은은 그동안 완화적 통화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재정정책은 긴축기조를 유지해왔다는 불만을 갖고 있는 중이다. 이는 금리인하 시기는 물론 인상 시기에도 마찬가지다.
금통위는 최근까지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에 대한 정책조합(policy mix)을 고민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 올 1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2018년도에는 재정지출보다 세수가 더 크게 늘어나면서 GDP대비 관리재정적자가 축소되어 재정정책이 긴축 기조로 전환됐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또 다른 위원은 “현 재정정책 기조의 지속가능성, 잠재성장률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통화정책을 어떤 식으로 조화롭게 운영할지를 심도 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추경 등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한은은 좀 더 여유를 갖고 금융불균형 문제에 통화정책을 집중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밖에도 한은 통화정책방향엔 ‘완화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라는 문구가 여전하다. 이는 한은이 6년5개월만에 처음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했던 2017년 11월 삽입된 문구다.
이같은 문구가 사라지기전까지 한은의 방향은 여전히 인상쪽으로 보는게 맞다. 설령 문구가 사라진다 해도 방향을 당장 인하로 변경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