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칼럼] ‘對北 제재’ 카드, 제3의 길 찾기

입력 2019-03-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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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객원교수

제재 해제는 하노이 정상회담의 주 쟁점이었다. 북한은 영변을 폐기할 터이니 안보리의 주요 제재를 해제하라는 요구를 내놓았다. 미국은 거부하고 핵과 미사일 및 생화학무기를 일괄 포기하라고 주문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집요하게 제재 해제를 요구하여 결국 회담은 결렬되었다.

제재 해제에 집착하는 북한의 태도는 마치 제재가 북한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고, 이의 해제는 북한에 화급한 이슈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우리 주위에는 제재로 인한 북한의 고통이 심각하여 북한의 핵 협상 전략에 영향을 줄 정도라는 통념이 존재한다. 하노이에서 북한이 보여준 모습은 그러한 통념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그것이 맞는 관찰일까?

물론 2016~17년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의 완성을 위해 박차를 가하던 시기에 부과된 안보리 제재가 그 이전의 제재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는 점도 맞다. 북한이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제재가 북한의 핵 협상 전략을 좌우할 정도로 심각한 이슈라고 보는 것은 판단의 비약이다. 제재의 고통은 있겠으나 그것이 북한의 핵 협상 전략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왜 그런지는 북한이 핵 문제를 두고 국제사회와 대결해 온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핵은 북한이 생존을 위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개발한 것이다. 핵을 개발하면 제재가 부과된다는 것은 북한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제재가 두려웠으면 북한은 이 길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제재는 북한이 각오하고 있는 바이고, 북한은 제재를 견디는 저항력도 갖고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이 아사(餓死)하여도 체제가 유지되었다. 그러니 북한에 제재는 핵 협상 과정에서 대처해야 할 사안이기는 하지만, 큰 양보를 고려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그 정도의 고려사항은 당연히 체제 생존과 안보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이 2018년 이래 협상에 나온 것이 제재를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당시 북한이 협상으로 선회한 이유는 완성 단계에 이른 핵과 미사일 능력을 지렛대로 삼아, 국면을 협상으로 전환시킬 때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고양된 협상 입지를 가지고 대미 담판을 벌임으로써, 한반도 안보 구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어 보되, 만일 여의치 않더라도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간의 틈새를 벌여 국제 제재를 이완하는 결과는 얻을 수 있다고 계산하였을 것이다. 어찌됐든 협상 이전보다는 나은 상황이 된다고 보았을 것이다. 제재가 두려워 대화에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감을 기반으로 상황을 적극 타개하기 위해 나왔다고 보아야 한다.

그 후 실제로 벌어진 일을 보면, 북한의 계산이 맞아 들어가고 있다고 볼 소지가 없지 않았다. 적어도 하노이 이전까지는 그렇다. 즉, 북한의 입장에서는 김정은이 2018년 초부터 평창올림픽 참가,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을 주도한 결과 최초로 미국의 정상과 대등하게 대좌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것이다. 더 나아가 김정은이 트럼프를 상대로 담판을 잘하여 북한에 유리한 싱가포르 합의문까지 끌어냈다고 생각할 것이다.

제재에 관해서도 작년 협상 국면이 열린 이래 중국과 러시아의 제재 이행이 느슨해진 것이 사실이다. 적발된 위반 사례만 해도 수백 건이다. 적발되지 않은 사례까지 감안하면 제재의 뒷문이 어느 정도 열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북한 비핵화로 가는 유용한 협상 도구이지만 잘못 운용하면 협상이 좌초되는 역기능이 발생할 수도 있다. 사진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가 12일(현지시간) 공개한 연례보고서 중 지난해 10월 28일 북한 육퉁호의 불법 해상환적 모습.   사진출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북한 비핵화로 가는 유용한 협상 도구이지만 잘못 운용하면 협상이 좌초되는 역기능이 발생할 수도 있다. 사진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가 12일(현지시간) 공개한 연례보고서 중 지난해 10월 28일 북한 육퉁호의 불법 해상환적 모습. 사진출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

그러면 북한이 하노이에서 제재 해제에 집착한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북한은 비핵화의 진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북 간 신뢰 구축이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을 싱가포르 합의문에 ‘신뢰 구축이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데 양 정상이 합의하였다’는 표현으로 반영해 두었다. 북한의 시각에서 보면, 제재하에서는 신뢰가 생길 수 없으니 당연히 제재부터 해제해야 한다. 이렇듯 북한이 제재 해제를 내세운 것은 그것이 신뢰 구축의 첫 스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단 북한이, 그것도 최고지도자가 협상에서 제재 해제를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놓은 이상, 그것이 핵심적 이해가 아니라도 북한은 이에 집착할 것이다. 유사한 전례가 북핵 교섭 역사에 많이 있다. 예컨대, 한때는 그것이 테러 지정국 해제였다. 북한은 테러 모자를 쓰고 미국과 대좌할 수는 없다고 하고, 테러 지정국 해제를 집요하게 요구하였다. 마치 그 이슈가 전부인 양 집착하였다. 다른 한때, 그것은 BDA(방코델타아시아) 동결 자금 해제였다. 북한은 동결 자금 2600만 달러 전액이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절대 대화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러다가 급기야 1차 핵 실험을 하였다. 그때에도 북한은 테러가 진정 고통스럽거나, 2600만 달러가 거액이라서 그토록 집착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북한의 협상 방침이 그랬기 때문에 편집적으로 몰입한 것이다. 결국 북한은 테러 지정국 해제와 BDA 자금 반환에서 모두 뜻을 이루었다.

그러니 하노이 이후에도 제재 해제 문제를 우회하고서 협상을 진전시키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두 개의 상반된 관점이 존재한다. 둘 다 제재가 북한의 핵 협상 전략에 영향을 준다는 통념으로부터 연역된 것이다.

첫째, 제재가 북한에 최대 이슈이므로 이것을 들어주면 비핵화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제재 해제 카드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재는 북한에 고통은 줄지언정, 북한으로 하여금 핵문제에서 결정적 양보를 하도록 만들지는 못한다. 북한에 있어 제재 해제는 비핵화로 가는 도정에서 달성해야 할 목표 중 하나이지, 그것이 북핵 협상의 본질적 소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핵 협상의 본질적 소재는 안보 문제이다. 그러므로 제재 해제와 일부 비핵화 조치가 교환되더라도, 그것은 비핵화 협상을 계속 추동하는 효과를 낼 뿐, 비핵화의 큰 진전을 견인하지는 못한다.

둘째, 북한이 이토록 제재에 매달리고 있으니, 제재를 강화하면 북한으로부터 비핵화의 큰 양보를 얻어 낼 수 있으리라는 관점이다. 제재 카드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미국의 강경파들이 이런 생각을 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제재가 북한의 전략적 판단을 좌우하는 이슈가 아니므로, 제재 카드가 과도하게 구사되면 북한은 양보가 아니라, 바로 강수로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제재가 유용한 협상 도구이지만, 잘못 운용하면 협상이 좌초되는 역기능이 있을 수 있다.

사리가 이렇다면, 우리의 대처 방향은 상기 두 관점이 아닌 제3의 길에서 찾아야 한다. 제재 카드를 과하지 않게 구사하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제제 해제 카드도 적절히 운용하여 협상의 동력을 유지하면서, 비핵화의 큰 진전은 안보 카드를 통해 견인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라고 할 것이다.

요컨대 제재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 전략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은 아니다. 북한이 제재 해제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접근 원칙상 비핵화 경로의 초기 단계에서 우선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나 이를 도외시하면 협상의 진전은 어렵다.

그러므로 제재 문제에 관한 우리의 대처는 마땅히 북한의 계산을 간파한 바탕 위에서 절도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제재의 효능을 과신하지 않아야 하고, 제재 해제의 효능도 과신하지 않아야 한다. 제재에 대한 북한의 속셈을 오독하면 우리의 대처 또한 오도될 수 있다.

주러시아 대사,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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