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전부터 주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22일 열린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주총에서 완패했다. 주총에서 고배당 지급, 자신들이 원하는 사외이사 선임 등을 요구했지만 원하는 걸 하나도 얻지 못한 것이다.
엘리엇은 그나마 낫다. 지난해 11월부터 한진칼의 지분을 사들이며 2대 주주로 등극, 한진그룹을 위협했던 강성부 펀드(이하 KCGI)는 주총장 문턱조차 넘어보지 못했다.
총수 퇴진 등 한마디 발언권도 가져보지 못한 채 꿈이 좌절됐다. 한 달만 일찍 주식을 샀어도 상법에 규정된 ‘주식 보유기간 6개월’을 충족시켜 주주제안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았을 텐데, 법과 절차에 대한 지식은 다소 부족했다.
오래전부터 주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걸었던 이들은 깊은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좀 미안한 얘기이지만, 이들의 ‘야심’을 향한 움직임과 달리 주총 전에 이미 패배가 감지됐었다. ISS, 글래스 루이스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은 물론 국내 자문사들까지도 주총 전에 이미 기업들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행동주의 펀드 특성상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성보다는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한다는 우려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단기적 주가 부양을 통한 이익 극대화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주주총회에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것.
미국의 저명한 경제 애널리스트인 라나 포루하는 최근 저서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Makers & Takers)’를 통해 “사모펀드는 미래를 위한 투자에 신경쓰기보다는 단기 주가 부양을 위한 경영 방식을 택하도록 압박을 가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주총에서 현대차, 모비스가 제안한 1주 배당금의 6~7배에 달하는 규모를 제안했다. 전문가들이 “향후 연구 개발이나 공장 투자를 위한 자본요건 충족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듯 무리한 요구였다.
28일 열리는 현대홈쇼핑 주총에서는 미국계 투자회사 돌턴인베스트먼트와 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이 자사주 매입·소각·배당 증대 제안을 예고한 상태다.
게다가 행동주의 펀드가 요구해 온, 재벌 총수들의 퇴진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논리보다 감정이 앞섰다. 어찌 보면 재벌 총수(대주주)들의 도덕성 문제와는 별개로, 이는 좀 더 재무적인 면에서 신중하게 살펴볼 일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씨, 정씨 집안이 삼성, 현대에서 쫓겨나면 국민이 하루는 즐겁겠지만, 이들 기업이 글로벌 금융자본에 먹히게 되면 국민이 20년 고생하게 된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치열하게 생존해 온 기업들의 경쟁력과 필요성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