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보험사기범의 주머니는 내 돈으로 채워진다. 보험은 ‘한 사람은 만인을 위해, 만인은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민간의 공적 부조다. 하지만 보험사기는 보험 근본 질서를 어지럽힌다. 보험사기로 보험금을 타낸 개인은 이익일지 모르지만, 이는 다른 보험 가입자의 추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연간 보험사기로 민간보험에서만 5조 원에 달하는 보험금이 샌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파악한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4000억 원에 불과하다. 연간으로 환산해도 8000억 원으로 예상 규모의 20%만 적발한 셈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전체 보험사기 규모가 얼마인지 그 누구도 정확하게 파악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보험사기 조사 전문가는 연간 최대 10조 원의 보험금이 사기와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김현수 현대해상화재보험 보험조사부 조사실장은 지난달 27일 현대해상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보험사기 금액이 10조 원을 웃돌 것”이라며 “전체 보험금 지급액의 절반은 보험사기와 관련된 금액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사기 관련 지급액의 20%인 2조 원만 줄여도 보험료를 더 올릴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오히려 보험료 인하 여력이 생겨 최대 2%까지 내릴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내놨다.
김 실장은 경찰 조사관으로 일하다, 2001년 보험사기조사관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현대해상 본사에서만 15년째 전국 보험사기의 뒤를 쫓고 있는 업계 베테랑이다. 김 실장은 보험사기를 정의해 달라는 말에 “보험사기는 전문 영역이 아닌 ‘타인 기만행위’”라고 답했다. 전문 브로커가 설계한 지능범죄부터 일반인이 보험금을 더 많이 타 내는 것까지 모두 포함된다는 뜻이다.
김 실장은 다양한 보험사기 유형을 설명하면서도 각종 제도적 제한과 현실적 문제로 처벌이 어려운 점을 토로했다. 그는 “수사관으로선 보험사기를 입증하는 일이 어렵다”며 “예를 들어 특정 한방병원에 입원한 20명 가운데 진짜 환자 1명을 찾아야만 나머지 19명이 허위 환자임을 입증할 수 있다. 단 1명을 찾지 못해 기소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보험사기의 특수성 때문에 내부 고발자의 신고가 중요하다. 김 실장은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등 실제 치료를 전담한 사람 등 내부 고발자의 신고가 중요하다”며 “제보자 없이 기소를 진행하면 기소율이 떨어지고, (해당) 사례와 판례가 남아 (보험사기 혐의자를) 기소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보험사기 적발 금액이 늘어나는데 이는 보험사기가 증가한 게 아니라 항상 있었던 보험사기를 더 많이 적발한 것뿐”이라며 “병원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