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 한 번 갔다 와.”
“네? 강원도 양구요?”
”그래 양구. 피시방 가격이 그렇게 비싸다던데 진짠지 확인해 봐.”
“엇…그거 기사 나왔습니다. 다른 신문에서 전화로 확인했는데 아니라고….”
“전화 말고, 직접 가.”
“넵.”
15일 실제로 양구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난 뒤, 직접 보러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기자는 현장에 가 봐야 한다’던가? SNS상에서 제기된 양구 피시방 요금이 시간당 2100원이라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으며, 애초에 그런 식으로 특정 집단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는 게 쉽지 않은 구조였다.
도착하자마자 피시방부터 둘러봤다. 기자도 사실 ‘양구에서는 군인 상대로 엄청난 폭리를 취한다’는 소문을 군 입대하기도 전인 10여 년 전부터 들어봤다. 그래서 기자가 모르게 군인을 상대로만 바가지를 씌우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첫 피시방에 들어가자마자 ‘아!’하고 탄식이 나왔다. 바로 전날에도 집 근처 피시방을 갔는데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요즘 피시방은 대부분 키오스크로 선불결제를 해야만 좌석을 이용할 수 있다. 양구도 마찬가지다. 요금 결제 자체를 키오스크를 통해 진행한다. 당연히 키오스크에 군인 식별 기능이 탑재돼 있지는 않으며, 어떤 손님이 오더라도 이용요금은 1시간당 1600원으로 고정돼 있다. 회원과 비회원 모두 요금은 시간당 1600원의 요금은 같지만, 회원의 경우 이용하다 남은 시간을 다음 방문 시 또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애초에 1시간당 1600원의 이용요금 자체가 다소 비싸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견해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일반적인 수도권 지역 피시방 이용요금은 1시간에 1000원 안팎이다. 양구 피시방들은 의자와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헤드폰 등의 설비가 최신식이긴 했지만, 시간당 1600원은 서울에서도 종로나 강남같이 임대료가 높은 지역에서나 받을 만큼, 높은 요금인 것은 사실이다.
양구 지역 피시방은 최근 10년 내 꾸준히 이 정도의 요금을 받아왔다.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 출신의 주모(35) 씨는 “내가 전역한 2008년 당시 양구 피시방 가격이 1500원이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가격이 정말 높았던 셈이다. 그래서 11년 새 요금이 100원만 오른 점은 다소 놀랐다”면서 “그때도 사실 피시방 비나 숙박비 말고는 크게 비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SNS상에서의 뜬소문처럼 시간당 2100원이라는 폭리를 취하는 피시방은 찾아보지 못했다.
평일이어서 그랬는지 몇몇 피시방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도 있었다. 양구 시내의 한 피시방 관계자 A 씨는 “인터넷에 올라온 소문으로 2100원을 받는다는 얘기가 시작됐는데, 보다시피 이렇게 사람도 없는 데 바가지를 씌우는 게 가능할 리가 있냐”면서 “헛소문 퍼뜨린 사람을 잡고 싶어서 경찰서에 여럿이 다녀올 만큼, 양구 피시방 업주들이 화가 나있다”고 말했다.
식당이나 코인노래방, 오락실 같이 군인들이 외출과 외박을 나와서 이용하는 편의시설들의 가격들도 알아봤다. 먼저 식당의 경우 양구엔 정말 많은 외식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들어서 있었다. 사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식당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였다.
이런 프랜차이즈들은 방침상 정가 이상의 폭리를 취하면 본사 제재를 받을 수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특별히 높은 가격을 받을 수가 없다. 만일 군인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식당이 있다 하더라도 옆의 프랜차이즈 식당을 찾아가면 바가지를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런 비양심적인 식당이 들어서기도 어려운 구조다.
코인노래방은 500원에 2곡, 1000원에 4곡. 오락실은 500원에 2판. 양구의 물가가 서울과 비슷한 것이 과연 합당한가는 둘째 치더라도, 여느 서울 동네보다 특별히 저렴하거나 비싸지는 않은 물가였다.
양구는 군부대 중에도 손꼽히는 격오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강원도에서도 비교적 도심권인 삼척 부근에서 군 생활을 한 기자도 양구라는 곳은 시내래 봐야 피시방 두세 개, 분식집과 중국집 하나 정도가 갖춰진 머나먼 벽촌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양구 번화가는 서울 웬만한 동네의 번화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빼곡히 상점이 들어서 있었다. 조금 과장하면 압도적인 유동인구의 노량진 공시촌 정도는 돼야 양구 시내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상권을 잘 살펴보면 ‘이 지역에서 군인이 과연 '을'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상당수의 가게는 ‘군 장병 우대’와 같은 문구를 붙여놓았다. 이날 식사를 했던 한 식당에서는 군 장병들을 외출 외박 복귀 시 부대까지 태워다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양구 인근에 위치한 ○○부대와 △△△부대로 휴가 복귀 중인 병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하지만 두 부대 병사들 모두 “바가지 써 보신 적 있으세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경험해 본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양구에서 20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식당을 차렸다는 자영업자 B 씨는 “처음 양구에 왔을 때만 해도 정말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최근엔 큰 도로도 많이 생기고 이런저런 시설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다만, B 씨는 “2월 들어 위수 지역이 폐지됨에 따라 병사들이 춘천이나 강릉 같은 대도시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보다 양구 상권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바가지를 씌운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라고 했다.
역시 양구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택시기사 C 씨 역시 “양구는 군인의 소비가 70%인 지역인데 국방개혁으로 군 인원을 감축한다고 해서 상권이 크게 위축될 위기”라며 “요즘 같은 때 양구에서 군인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우면 순식간에 소문이 나기 때문에 상인이 '갑'이 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