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로부터 평소보다 심한 질책을 당한 직후 일을 하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5부는 사망한 작업반장 A 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해달라"라고 낸 소송에서 1심 판단을 뒤집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 씨는 2015년 1월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신축공사 현장에서 천공 작업을 하던 중 실신했다. 이후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뇌출혈 등으로 이틀 만에 사망했다.
현장 작업반장이던 그는 쓰러지기 10분 전 공사 사업주 B 씨로부터 작업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반장이라는 사람이 무슨 작업을 이따위로 하느냐"는 등 평소보다 심한 질책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근로복지공단은 A 씨가 사망한 것이 지병인 뇌동맥류 때문이고, 만성 과로나 급격한 업무환경 변화 등이 없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거절했다.
유족이 낸 소송에서도 1심은 "A 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타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라는 판단을 했다.
당시 1심은 "평소보다 심한 질책을 당하긴 했으나 인격적 모욕에까지 이르지는 않았고, 질책 직후 바로 작업에 착수한 점을 보면 평정심을 잃고 혈압이 급격히 상승할 정도로 돌발적인 흥분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기존의 뇌동맥류가 자연적인 진행 경과 이상으로 악화해 파열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업무상 재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A 씨는 질책을 받은 지 불과 10분 후 쪼그려 앉아 천공작업을 하다가 실신했는데, 질책과 사고 사이의 시간적 간격이 매우 짧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