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 일본 도쿄 긴자 상권 현황을 취재하기 위해 양품점, 디저트 가게 등 여러 점포를 돌아다녔다. 100년 된 노포(老鋪)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점주들에게 장수 비결을 묻자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편한 환경”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149년 된 나나타야 양품점의 오오모토 쿄타로 영업이사는 “오랜 단골들은 대부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그래도 무리한 임대료 상승이 없기에 큰 폭의 매출 타격은 없다”며 웃어 보였다.
동시대 우리나라는 사정이 한참 다르다. 서울시는 을지로 일대 재정비 사업을 밀어붙여왔다. 그러자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제조산업문화특구로 전환해 리모델링하고 경제·문화적 가치를 부흥하는 도시재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을지면옥’을 필두로 한 노포와 공구상 거리가 철거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소식에 여론이 악화하자 박원순 시장은 “전통을 살리는 방향으로 재설계하겠다”며 입장을 바꿨지만 오락가락 행정에 상황이 어디로 흘러갈지 속단할 수 없다.
을지로는 전 세계에 유례없는 경공업 클러스터로 수십년간 생동해 왔다. 재료 수급부터 가공 후 처리까지 하나의 생태계로서 유기적으로 협업해왔다. 이들 장인은 수십억 원짜리 자동화 기계로 할 작업을 사람 손으로 대체해 비용을 절감하는 등 든든하게 산업을 떠받쳐왔다. 팔다리를 잘라내면 기능할 수 없는 게 바로 ‘메이커시티’다. 실패작 ‘가든파이브’에서 이미 경험했듯 말이다.
기술강국 일본의 산업은 이른바 동네 공장(町工場, 마치코바)에서 태동했다. 논문 ‘일본 장인 문화의 특성과 지속가능성’에서는 “본래 개인의 생업이라는 지극히 사적 영역에 머물러 있던 장인 기술이 이제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보호 육성해야 하는, 보다 보편적 공적 가치로 전환됐다”고 오늘날의 장인들을 평가한다. ‘쫓겨나지 않을 권리’를 부르짖어야만 하는 한국의 ‘마치코바’들은 올겨울이 유난히 더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