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해 경제정책 방향의 핵심을 ‘경제활력 제고’에 맞추겠다며 기업투자 지원, 공유경제 활성화, 4대 주력산업 집중지원 등을 약속했지만 기업들은 시큰둥하다. 규제 완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지원보다 기업의 창의·자율성이 발휘될 수 있는 규제 혁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규제 공화국’ 오명 여전… 기업 발목 잡는 규제들 ‘산적’ = 정부는 ‘규제’를 바람직한 경제·사회 질서의 구현을 위해 정부가 민간활동에 개입해 기업·개인의 행위를 제약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 목적으로는 시장 실패 치유와 배분적 정의 실현 등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오히려 정부의 규제가 시장 실패를 야기한다고 호소한다. 정부도 과도한 규제에 대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불필요한 기업 규제의 완화를 외치는 이유다.하지만 여전히 ‘규제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번 정부 들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고 공익재단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등 대기업에 대한 규제의 강도를 높이는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가 우려되면서 각국 정부가 규제 완화 등을 통한 기업의 투자 및 고용 확대를 유도해 경제 성장의 선순환 구조 마련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을 ‘국가 비상사태’라고 규정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도 “기업 집단이 붕괴하면 새로운 산업을 키울 수 있는 힘이 약화한다”며 “그런 다음에는 아무리 혁신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상법·공정거래법 등 우려… 기업들 “일할 환경 만들어 달라” = 기업들은 △최저임금법안 △상법개정안 △공정거래법개정안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안 △상속세 및 증여세법안 △고용보험법안 등으로 인해 올해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우선 최저임금법안의 경우 정부가 근로시간에 유급휴일을 포함하면서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재계에서는 공평성·객관성·확정성 등 법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경제계는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기업들의 의견을 반영해 전문성을 높이고 정부의 책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한다.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안에 대해서도 기업 경영 원리에 배치되고, 경영 부담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협력이익공유제는 해외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법안”이라며 “정부가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설득력 있는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채 법제화하려는 것은 무리한 정책 시도”라고 비판했다.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역시 논란이 크다. 기업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법제도를 경제 환경 변화에 맞춘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일부 내용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며 “시장 투명성 제고와 기업의 예측 가능성 간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디테일의 묘를 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전문가들 “규제 개혁은 생존의 문제” =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과도한 규제에 따른 기업 경영환경 악화가 우려스럽다고 말한다.
과도한 기업규제로 규제집행 비용 증가가 우려된다. 기업의 규제준수 비용뿐만 아니라 회피비용을 유발, 국민 경제에 막대한 비용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기업의 투자 촉진 등을 통한 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재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규제 개혁을 통한 혁신 성장을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며 “세계 각국이 기업 규제 개혁을 통한 성장의 새로운 모멘텀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 개혁을 통한 기업경영 환경 개선 및 혁신 성장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정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점차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투자 수요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국내 경기 향방도 매우 불투명해지고 있다”면서 “규제 혁신 등을 통해 성장과 투자의 선순환 체계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