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생선을 눈앞에서 잡아 바로 먹는 활어회도 좋지만 감칠맛은 생선살에서 피를 뺀 후 단백질이 서서히 분해되도록 저온에서 몇 시간 숙성한 선어회가 더 좋을 거라는 비교도 있다. 포도주는 프랑스 어디서 언제 숙성된 것이 좋고, 위스키도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의 전통 깊은 양조장에서 잘 훈연(燻煙)된 참나무통에서 제대로 숙성된 걸 먹어야 한다는 ‘소믈리에’들의 말씀도 넘쳐난다.
숙성한 음식이 대유행을 하면서 ‘삭혔다’, ‘묵혔다’, ‘익혔다’, ‘절였다’, ‘담궜다’ 등 결이 다 다를 우리말은 ‘숙성’이라는 한자말 한마디로 통일됐고, ‘숙성 안 한 것은 맛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를 내렸다. 식당 유리문에 ‘특별한 숙성 과정을 거친 명품 순대’, ‘15시간 양심 숙성 고깃집’과 같은 문구를 써 붙인 식당이 나온 것도 그래서일 터.
그냥 ‘숙성’만으로는 ‘차별화’가 안 되니 ‘특별한 숙성’이라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으며, 숙성을 하지 않고 했다고 속이는 다른 업소와는 달리 자기네는 긴 시간 숙성된 것만 낸다는 걸 강조한 광고들이다. (숙성 안 한 걸 숙성했다고 속이는 건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인데, 어떤 영국 업자들은 위스키를 훈연된 참나무통에 담아서 숙성하지 않고, 참나무 숯가루를 섞어 냄새가 배도록 한 후 걸러내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한다. 닭고기에 숯가루를 뿌려 오래 구운 것처럼 ‘불맛’을 내는 치킨도 있다고 한다. 장사꾼이 생각 없이 달려드는 사람을 속이기는 참 쉬운 법이다!)
숙성된 걸 이리도 좋아하니 하루 수십 개씩 틀어주는 TV 먹방과 쿡방도 숙성된 음식을 내주는 식당만 보여준다. TV에 나온 식당 주인들은 “맛의 비결이 뭐냐?”는 PD의 질문에 처음엔 비법의 소스가 어쩌니, 어머니 손맛을 따라했느니라고 하지만 끝에 가면 “숙성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한 명도 예외가 없다.
뉴스는 비행기 탑승구에서 신분증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 달라고 한 공항직원에게 대뜸 “내가 누군데?”, “너네 사장 오라고 해”라고 소리쳤다가 여론의 뭇매를 맡는 여당 국회의원의 얼굴을 크게 보여주었다. “좀 참지. 좀 참고 그냥 탄 후에 천천히 잘잘못을 따졌으면 저렇게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욕을 먹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국회의원뿐인가.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와 법원에도 숙성 안 된 말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 천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사회가 팥죽 냄비처럼 이렇게 들끓지 않을 것이다. 기업 등 민간 부문도 마찬가지고. 이들은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한 후 말하고 행동하면 효과가 떨어진다고 보는 모양이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도 안 할 것이다. 자기를 건드리면 그냥 한 방 올려치고 뒤돌아서면서 가래침을 뱉는 거다.
숙의(熟議)와 숙려(熟慮)는 숙성과 사촌쯤은 되는 말일 텐데, 우리는 음식만 숙성된 걸 즐길 줄 알고,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숙의나 숙려를 하려 들지 않는 민족이 됐다. 이럴 바에는 그냥 생고기를 먹고 입가에 묻은 피도 닦지 말고 말하고 행동하자. 그게 차라리 어울린다. 숙성되지 않은 사람들이 숙성된 음식만 찾는 게 이상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