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혼인 중 임신하여 태어난 아이가 유전자 검사 결과 남편의 친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도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돼 친생부인의 소에 의해서만 친자관계를 부정할 수 있을까? 이에 관하여 최근 서울가정법원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이 선고돼 소개하고자 한다.
A(여)는 전남편 B와 혼인생활 중 C를 출산해 C를 전남편과의 아이로 출생신고했다. 이후 A와 B는 협의이혼했고, A가 C를 양육했다. 사실 C의 생부는 D였는데, 생부 D는 A의 이혼 이후 C를 다른 이름으로 자신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중으로 출생신고가 돼 있던 상황에서 C는 생부 D가 출생신고한 이름으로 자랐고, B와는 교류가 전혀 없었다. 10년이 훨씬 지나 A는 전남편인 B와 C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친생자관계 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친생자 추정에 관해 대법원 판결은 혼인 중 임신해 출생한 아이는 부인이 남편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아닌 한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된다고 본다. 남편이 장기간 교도소에 있었다거나 별거 상태에 있어 남편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이 외관상 명백한 경우가 아니라면 유전자검사에서 부자간 친자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친생자 추정이 배제되지 않는다. 대법원 판결의 논리를 위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면 유전자 검사 결과 친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A가 전남편 B와 혼인 중 동거 상태에서 C를 임신, 출산한 이상 C는 전남편 A의 친생자로 추정되므로, A가 전남편 B와 C 사이의 친자관계를 부정하려면 친생자가 아님을 안 때로부터 2년 이내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였어야 했다. 위 사건의 1심 판결은 이러한 대법원 판결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해 친생자 추정이 미치는 C에 대해 친생자관계 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한 것은 부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서울가정법원 항소심 판결은 1심 판결을 취소하면서 “부부가 이미 이혼하는 등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파탄됐고, 부와 자 사이의 사회적, 정서적 유대관계도 단절됐다”며 “혈액형 혹은 유전자형의 배치 등을 통해 B와 C 사이에 혈연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친생자 추정의 효력은 미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C가 만 4세일 때 A와 B가 이혼한 점, C와 B 사이에 교류가 전혀 없었던 점, C와 B 사이에 유전자 검사 결과 혈연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점 등에 비춰보면, C는 B의 친생자로 추정되지 않는다”며 친생자관계의 부존재확인을 구하는 소를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최근 10만 원 남짓이면 유전자 검사를 통하여 친자관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관계로 아침드라마에서나 보던 ‘유전자 검사 결과 내 아이가 아닌 사례’들이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너무나 명백하게 내 아이가 아닌 경우에까지 친생자 추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렇다고 해서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사정만으로 언제나 친생자 추정이 깨지게 된다면 아무 것도 모르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가정에 어느 날 갑자기 제3자인 생부가 나타나 친생자관계 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돼 가정의 평화와 아이의 복리에도 반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위 서울가정법원 항소심 판결은 혈연관계뿐만 아니라 가정의 평화, 아이의 복리까지 모두 고려해 새로운 친생자 추정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환영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