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냄비를 올려 둘 땐 밥상이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볼 땐 영화관이다. 토익 책을 펼쳐두면 독서실이다. 동시에 꿈을 위한 작업실이다. 청년들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그들만의 작은 공간. 바로 책상이다. 책상이 제공하는 작은 공간 속에는 청년들의 일상이 스며들어있다.
27일 중구 만리동 카페 '더하우스1932'에서는 '스담책상전(展)'이 열리고 있었다. 스담책상전은 '11월 문화가 있는 날'을 위해 청년 예술가들이 준비한 전시회로, 28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스담책상은 '스토리가 담긴 책상'의 줄임말이다. 꿈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의 노력뿐 아니라, 꿈을 위해 감내하는 그들의 고통까지 담아낸 상징물이다.
해당 전시를 기획한 오정은(27) 팀장은 "청년의 정의는 단순히 2030뿐 아니라 꿈을 위해 노력하는 4050까지 아우르는 의미"라면서 "모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직업적 전문성과 상관없이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품이 책상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취업을 준비하거나 퇴사 후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 모두 책상에서 목표를 위해 무언가를 할 것이고, 그들의 스토리가 책상에 스며들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제 직업인 무대 미술가의 역할 또한 무대를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전시를 통해 청년들의 일상을 말하고자 했다"라고 덧붙였다.
오 팀장이 이번 전시에서 집중한 것은 평범한 일상이다. 그는 "지금까지 건축가의 작업실, 디자이너의 책상 등 유명한 사람들의 책상을 보러 가는 사람은 많았다"면서 "이번 전시는 평범한 우리의 책상을 보여주고 공유하며, 동시대 청년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스담책상의 '스담' 역시 손으로 살살 어루 만져준다는 '쓰담쓰담'에서 가져온 단어다.
스담책상전 입구에는 시민들이 예술로부터 느끼는 괴리감을 줄일 수 있는 '애피타이저' 단계의 책상이 준비돼 있다. 전시회 방문객들이 각자의 느낌대로 작품 한 칸을 색칠해나가면, 36명의 방문객이 모였을 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이날 친구 두 명과 전시회를 방문한 경기여상 학생 김모(18) 양은 "카페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게 색다른 경험이면서 재밌다"면서 그림을 완성시킨 것에 뿌듯해 했다.
근처 직장을 다니는 이모(27) 씨는 동료와 함께 스담책상전이 열리는 카페에 방문했다. 그는 "사실 전시회가 열리는 지 모르고 왔는데, 와보니 문 앞에 '문화가 있는 날' 알림판이 있더라"면서 "온 김에 그림도 그리고 전시회도 보고 갈 것"이라며 웃었다.
스담책상전에는 크게 4개의 책상이 전시된다. 청년 무대 미술가가 첫 작업을 시작하는 '첫 만남', 여러 개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교차 작업', 최종 도출한 콘셉트로 무대 작업화를 하는 '고독한 무대 미술가', 최종 작품을 완성시키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책상이 순서대로 전시관을 채웠다.
전시된 책상들은 깨끗하거나 고급스럽지 않다. '예술가의 책상'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과감히 깨버린다. 물건들로 가득 찬 책상은 공간이 좁아 노트북을 비스듬히 세울 수밖에 없다. 예술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애플 맥북도 없다. 투박한 검은 노트북만 있을 뿐. 책상 밑 휴지통에는 구겨진 종이들과 쓰레기가 가득하다. 당장 집에 가서 만나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책상이다.
마지막 책상에서는 영상이 상영된다. 작은 책상 위, 더 작은 영상 박스를 통해 한 청년이 보여주는 그의 심리는 다채로우면서 밝다. 작은 책상에서 꿈꾸는 원대한 목표는 그 청년이 고된 일상을 버텨내는 힘이다. 작은 지하의 공간이지만 영상 박스 앞에 나란히 놓인 세 개의 의자는, 모든 청년을 응원하는 그들의 가족, 친구들의 자리를 상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난해에는 작가이자 편집자인 조나단 오펜쇼가 '데스크톱(Desk Top)' 전시회를 통해 유명한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책상을 공개했다. 해당 전시를 통해 세계적인 건축가 세빌 피치와 니콜라스 그림쇼 등의 작업 공간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했고,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오펜쇼는 당시 "우리가 아이디어를 만들고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담책상전에 공개된 책상들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예술가들의 책상은 아니다. 낡은 책상 위에는 라면 국물로 보이는 얼룩이 가득하고, 공간은 비좁아 두 팔을 올릴 곳도 없다. 하지만 스담책상을 보고 있으면 관람객을 '쓰담쓰담' 해주는 듯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내 청춘이, 너의 청춘이 그들의 청춘과 다를 것 없이 고통스럽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위로. 28일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스담책상전의 위로를 받으러 가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