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열흘 전 모 방송사 주최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이후 지금껏 몸살 때문에 골골거리고 있다. 큰아이 말마따나 ‘반백살(50세를 뜻하는 신조어)’에 접어드니 체력이 떨어진 모양이다. 마라톤 동호회 회장은 “달리는 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글래디스 버릴이라는 미국 할머니는 아흔두 살에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 완주했다”며 마라톤 포기를 만류했다. 마음을 굳힌 탓일까. 회장의 말보다는 “중년엔 마라톤 같은 무리한 운동은 되도록 자제하고 스트레칭과 가벼운 산책을 즐기는 게 좋다”라는 의사의 말이 더 귀에 꽂힌다. 물론 목표인 ‘풀코스 완주’를 이루지 못한 건 정말 아쉽다. 누구나 인생에 아쉬움이 왜 없으랴.
몸살로 입맛을 잃었다. 찬바람이 부는 이맘때면 혀를 굼실대게 하던 과메기, 생굴, 곰치 맛집을 가도 영 입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심지어 된장을 푼 쌀뜨물에 살이 통통하고 쫄깃하며 간간한 새꼬막과 청양고추를 넣어 끓인 알큰한 꼬막된장국을 먹어도, 그 감칠맛을 모르겠다. 코가 막혀 음식 냄새를 맡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콜록대고 훌쩍거리는 바람에 “감기 걸렸어요? 빨리 나으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여러 개 받았다. 그중엔 “감기 얼른 낳으세요”라는 문자도 몇 건 있다. 장난이지 싶다가 ‘혼동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낳다’와 ‘낫다’는 발음상의 문제로 많은 이들이 헷갈려 하는 말이다.
낳다는 “낳는 놈마다 정승 난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 등의 속담처럼 배 속의 아이, 새끼, 알을 몸 밖으로 내놓다, 즉 출산(出産)을 뜻한다. [나타]라고 소리 내야 바르다. ‘ㅌ’은 ‘ㅎ’과 ‘ㄷ’을 합한 소리다. 그런데 ‘-아, -으면, -으니’로 활용할 경우엔 발음에서 ‘ㅎ’이 사라진다. ‘낳다’와 ‘낫다’를 혼동하게 되는 순간이다. 활용어에 ‘낳고/낳아/낳아서/낳으면/낳으니’처럼 ‘ㅎ’을 밝혀 적는 것은 ‘낫다’의 뜻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감기 얼른 낳으세요”는 나에게 ‘감기 엄마’가 되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감기 등 병이나 상처 따위가 고쳐져 원래대로 되다라는 뜻의 ‘낫다’는 ‘낫고/나아/나아서/나으면/나으니’와 같이 활용된다. 어간 ‘ㅅ’은 ‘ㅇ’으로 시작되는 어미와 만나면 표기에 ‘ㅅ’ 받침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낫다’는 [낟따], ‘낫고’는 [낟꼬]로 발음하면 된다.
회사 앞 갈비집에서 갓 담근 김장김치에 공깃밥을 뚝딱 비웠다. 식당을 나서는데 식당 사장님이 김치 몇 포기를 싸주신다. 식당 앞 주스집에선 레몬차에 레몬청을 두 숟갈이나 더 넣어주신다. 감기를 한 방에 낫게 할 뜨거운 이웃의 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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