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업계에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1년 새 업계를 떠난 ‘보험맨’만 7000여 명에 달한다. 장기화한 경기침체로 계약은 줄고, 해약은 늘었기 때문이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등 자본규제가 강화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허리띠 졸라매기’는 더 혹독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내보내 아들 자리 만든다 =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16개 생명보험사의 6월 말 기준 임직원 수는 2만631명이다. 정부의 일자리 확대 정책에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360여 명 늘긴 했지만,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하면 200여 명 줄었다. 아들(공채) 일자리 만들어주기 위해 아버지(희망퇴직)가 회사를 떠난 셈이다.
보험영업의 ‘꽃’으로 불리는 전속설계사 사정은 더 하다. 6월 말 기준 전속설계사 수는 8만7869명이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반년 만에 2840여 명이 일을 그만뒀다. 설계사 통계를 시작한 1997년 29만 명과 비교하면 20년 만에 3분의 1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경기침체로 영업이 어려워진 데다 인센티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보험대리점(GA)으로 이직하는 설계사가 늘었기 때문이다.
설계사가 줄자, 영업점과 대리점도 문을 닫고 있다. 올해 상반기 생보사 점포수(해외 제외)는 2792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3개 줄었다. 관계자들은 내년 설계사의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화되면 인력 구조조정은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건비 부담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설계사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직접 고용할 경우 2조 원의 추가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A 생보사 관계자는 “영업환경 자체가 바뀌고 있어 인력 축소 움직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형사 넘어 대형사까지 칼바람 = 올해 3월 PCA생명을 품에 안은 미래에셋생명은 지난달 근속 7년 이상·4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연령과 근속에 따라 36~40개월치 급여를 한 번에 지급하고 생활안정자금과 자녀 학자금 등도 지원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 역시 최근 근속 2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공로휴직 신청을 받았다. 공로휴직은 기본급만 받고 6개월 또는 1년간 휴직하는 제도다.
푸본현대생명(옛 현대라이프생명)도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구조조정을 통해 임직원 260명, 설계사 1500명을 내보냈다. KDB생명 역시 대규모 희망퇴직을 통해 2016년 1000여 명에 달하던 직원을 630여 명으로 줄였다. 지점은 70개 넘게 문을 닫았다. 여기에 이번 국감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인수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해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도 남아있다. 매각설에 시달리고 있는 동양생명과 ABL생명도 칼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관계자는 “IFRS17 도입으로 자본금도 추가로 쌓아야 하고, 즉시연금·암보험 분쟁 등 영업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며 “구조조정은 중소형사는 물론 대형사들도 피해갈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