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어느 방송사의 주말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상대방을 칭할 때 ‘귀하’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귀하는 ‘貴下’라고 쓰며 각 글자는 ‘귀할 귀’, ‘아래 하’라고 훈독한다. 글자대로라면 ‘귀한 아래’라는 뜻이다.
국어사전은 貴下를 “①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 ②편지 따위에서 상대방 이름 밑에 붙여 쓰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②의 뜻이 ①보다 먼저 발생했을 가능성이 많다. 상대방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귀하신 분의 아래에’ 올린다는 뜻에서 貴下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貴下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족하(足下)’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상대방의 ‘발아래’에 편지를 올린다는 뜻으로 그런 말을 사용했다. 貴下는 항일시대에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말이다.
‘집 각(閣)’을 쓰는 閣下는 상대방의 ‘집 아래’라는 뜻이니 큰 집을 가진 권세가를 상대로 사용하는 말이고, 궁전을 나타내는 ‘집 전(殿)’을 쓰는 殿下는 ‘임금의 아래’라는 뜻이니 임금에게만 쓰는 말이다. 귀한 분의 아래, 상대방의 발아래, 권문세가의 집 아래. 왕이 사는 궁전 아래에 글을 올리며 사용하던 貴下, 足下, 閣下, 殿下는 나중에 상대방을 지칭하는 칭호로도 사용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貴下가 우리말의 ‘여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어 주로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 쓴다고 한다. 항일시대에 貴下와 함께 ‘貴中’이라는 말도 들어왔다. “귀하신 분들 가운데(中)로 보낸다”는 뜻을 가진 ‘貴中’은 개인이 아니라 단체를 향해 편지를 보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제는 일본에서 들어온 貴下와 貴中이 우리가 본래 사용하던 足下를 제치고 일상어로 굳어져 버렸다. 대통령을 ‘각하’가 아니라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면서부터 貴下 대신 ‘○○○님께’라는 순우리말 표현이 퍼지고 있다. 참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