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1위 삼성은 그동안 대부분의 사업영역에서 선도적 행보를 보였지만 유독 대북사업 측면에서는 북한과 인연이 많지 않았다. 1999∼2010년 국내에서 생산한 브라운관 TV·전화기·라디오 등의 부품을 평양에서 위탁가공 생산한 정도였다.
그룹 총수가 북한 땅을 처음 밟는 시기도 다른 대기업보다 늦었다. 지난 2000년과 2007년에는 당시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윤종용 부회장이 방북길에 올랐다. LG그룹의 경우 2000년과 2007년에는 고(故) 구본무 선대 회장이 평양땅을 밟았고, 최태원 SK 회장은 2007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 부회장의 이번 첫 방북이 관심을 끄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삼성전자만 놓고 보면 과거처럼 가전제품을 위탁가공 생산하는 것 외의 협력모델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삼성그룹 계열사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건설·조선·상사·바이오 등 검토해볼 만한 대북사업 시나리오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도 이날 이 부회장의 방북을 조명하면서 "남북한 경제가 연결되고, 한국이 아시아 대륙과 연결될 수 있는 육로가 생기고, 수익성이 높은 무역과 인프라가 개방될 수 있는 계획들을 문재인 정권이 제시했다"며 "이런 계획은 결국 삼성과 다른 재벌들에도 (사업적)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부회장은 이번 방북 직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전날 4대 기업(삼성·현대차·SK·LG) 중 유일하게 총수 본인이 삼청동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에서 이뤄진 방북 교육에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또 이날 새벽에는 서울 태평로 삼성전자 사옥에서 임원회의를 소집해 북한에서 진행될 면담 등을 앞두고 관련 사안들을 최종적으로 점검하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형사재판이 아직 남아있는 만큼, 삼성이 이른 시일 내 대북사업 윤곽을 그리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방북을 사업적 측면보다는 국내 1위 대기업으로서의 당위성 측면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