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의 장기화와 기업들의 실적 부진으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전환사채(CB)의 전환가액 조정(리픽싱)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신주 발행 증가로 주주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주가 하락에 따른 전환사채(CB) 리픽싱 공시는 총 476건이다. 2016년 142건(지난해 429건)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리픽싱은 주가가 낮아질 경우 전환가격(CB를 주식으로 바꿀 때의 가격)을 낮춰 가격을 재정비하는 방식이다. 3월부터 4979억 원어치의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됐다.
통상 주가 하락에 따른 리픽싱은 실적이 부진한 기업들이 부채를 줄이고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기존 부채(사채)를 자본(주식)으로 바꿔 자본구조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환사채는 1년 후부터 주식 전환이 가능하고, 주식 전환청구 시 채권은 소멸한다. 기존 투자자들은 리픽싱을 통해 낮은 가격에 사채를 주식으로 바꿀 수 있다.
가령 한 상장사가 전환가액을 1만 원으로 잡아 10억 원 규모의 CB를 발행했을 때,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10만 주가 신규로 발행된다. 주가 하락으로 전환가액을 5000원으로 낮출 시 20만 주의 신주가 발행되는 셈이다.
문제는 리픽싱의 급증은 투자자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리픽싱 후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주식을 전환해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고, 주식의 수가 급증하면 기업의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주주 지분율도 큰 폭으로 내릴 수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은 주가가 하락했을 때 발행조건과 자금조달 여건 등을 반영해 가격 하락에 대한 설정을 하게 된다”며 “가격이 달라지면 전환되는 주식도 많아질 수 있어서 주주가치가 희석될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리픽싱 후 주가가 상승하면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유리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 하락에 따른 리픽싱은 발행 당시의 주식 전환 확률을 유지하고, 레버리지 효과(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는 것)를 기대하게 해 투자 매력을 높인다”며 “리픽싱 이후 주가가 상승하게 되면 최초 발행 조건에서의 수익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