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인간 빅데이터 시대가 온다

입력 2018-09-0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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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용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장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화로부터 시작됐다. 아날로그로 존재하던 수많은 것들이 0과 1의 조합인 디지털로 전환됐고 데이터가 쌓여 빅데이터가 됐다. 빅데이터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과 같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산업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시대. 바로 4차 산업혁명의 모습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이라고도 부른다.

디지털 전환에 앞선 국가와 기업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을 국내로 불러들인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생산 시설을 디지털화하고 상호 연결함으로써 실현됐다. 오랜 기간 디지털 위치정보와 관련 기술을 축적해 온 구글이 자율주행차 개발을 선도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구글뿐이 아니다. 아마존, 페이스북 등 수많은 기업이 저마다의 거대 플랫폼에서 축적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지능형 맞춤 서비스와 새로운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의 후발주자다. 우리의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이 미국, 일본, 중국 등에 비해 뒤처져 있으며 이 격차가 5년 후에도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민간기관의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후발주자에게도 기회는 있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전환에서 앞설 수 있는 아날로그 영역이 아직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 그 자체이다. 인간은 아직 아날로그이다.

3차원 전신 스캐너와 인보디, 스마트 센서, 사물인터넷 등을 이용하면 인간의 수많은 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다. 우리 몸을 스캔하면 200개가 넘는 치수를 계측해 3차원 형상을 얻을 수 있다. 인체 부위별로 단면을 살펴보고 부피도 계산한다. 이런 정보를 이용하면 우리 몸에 딱 맞는 옷, 신발, 안경, 장갑, 침구, 가구, 스포츠용품 등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우리 몸의 어느 부위가 비만인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좌우 밸런스는 맞는지, 척추나 목이 얼마나 휘었는지도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머지않아 모든 인류가 자신의 디지털 데이터를 생성하는 인간 빅데이터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인간 빅데이터의 가치와 활용도는 구글의 디지털 위치정보와는 비교가 안 된다. 인간 빅데이터는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낼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디지털 생태계가 열리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2003년 한국인 인체치수조사(Size Korea) 사업을 통해 세계에서 4번째로 인간을 3차원으로 디지털화했다. 이후 정책적인 지원을 지속해 온 결과 현재는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디지털 피팅 분야(ISO/TC 133/WG 2) 의장국을 맡기에 이르렀다.

국가기술표준원은 그 동안의 인체치수조사 사업을 발전시켜 개개인이 3차원 가상인체(아바타)를 의류쇼핑과 건강관리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인간 빅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개개인이 저마다의 디지털 데이터를 가지고 온갖 제품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인간 빅데이터 시대. 새로운 미래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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