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에 적응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은행권은 조용하다. 올해 특례업종(사업자와 노동자 합의로 법정 근로시간과 상관없이 초과근무 가능한 업종)에서 제외돼 내년 7월로 시행이 미뤄진 덕분이다. 조기 도입을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노조는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IBK기업 등 6대 시중은행은 아직 주 52시간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산별 교섭이 무산된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애초 노사는 지난달 1일부터 조기 도입을 두고 협상했으나 결렬됐다.
은행들은 대신 정해진 시간 이후 컴퓨터를 강제로 끄는 ‘PC오프제’와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PC오프제’를 시행하고 있고, KB금융지주는 10월부터 시행한다. 기업은행은 오전 7시~오후 1시에 출근해 하루 9시간(식사시간 포함) 근무하는 유연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오전 8시부터 10시 30분까지 30분 단위로 출근 시간에 따라 퇴근 시간이 달라지는 유연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은 비교적 여유로운 상황이다. 씨티은행은 이미 2007년부터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유연근무제를, 제일은행은 자유롭게 출퇴근 시간을 정하는 ‘시차출퇴근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다음 달 총파업을 예고했다. 2016년 9월 이후 2년 만이다. 총파업을 막으려 사측이 대표자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낙관하긴 어렵다. 쟁점은 특수직무에 주52시간제를 적용할지 등이다. 정보통신기술(IT)과 자금관리, 운전기사, 경비, 탄력점포, 대관, 홍보, 국제금융 부서가 대표적이다. 사측은 근무시간과 형태가 다양해 정확한 시간을 계산하기 어렵다고 한다. 반면 노조 측은 전체 직군에 주 52시간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맞섰다. 예외업종 허용은 근로기준법 개정 취지와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실제 은행권 노동시간과 강도는 높은 편이다. 금융노조가 17일 내놓은 전체 노조원 9만39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만8036명 가운데 43.7%(7755명)가 주 52시간을 넘겨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로사 위험이 큰 주 60시간 이상 근무도 7.4%(1321명)에 달했다. 응답자의 70.2%(1만1275명)가 일주일에 3일 이상 연장근무했다.
시중은행 직원은 “전에 근무하던 지점에서는 아무리 일을 해도 줄지 않았고 매일 밤 11~12시까지 일했다”며 “주 52시간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