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과 KT가 5G 통신장비 도입을 앞두고 ‘화웨이 딜레마’에 빠졌다.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 도입을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국내시장 80%를 차지하고 있는 SK텔레콤과 KT는 외부 요인 등으로 쉽게 화웨이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성비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보안 등 정치적인 이슈 사이에서 두 회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8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과 KT가 5G 통신장비를 두고 막판 고심에 빠졌다. 시장 3위인 LG유플러스가 사실상 4G LTE에 이어 5G 통신장비까지 화웨이를 쓰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SK텔레콤과 KT의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전날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상하이 2018’이 열리고 있는 중국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화웨이 장비가 제일 빠르고 성능도 좋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5G에서도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이어 “화웨이에 대해선 성능, 품질, 운송 등이 얘기된 대로,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4개 벤더 체제로 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5G 장비 후보군에 화웨이를 사실상 확정했다는 의미다. LG유플러스는 4세대 LTE 장비에서도 삼성전자, 노키아, 에릭슨 3개사와 함께 이통사 중 유일하게 화웨이 장비를 공급받은 바 있다.
경쟁사인 SK텔레콤과 KT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년 3월 세계 최초 5세대(G) 이동통신 상용화를 앞두고 올해 9월까지는 5G 통신장비 구축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 정부에 중국의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고 비공식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 인가 사업자인 SK텔레콤과 공기업의 잔재가 남아있는 KT로서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MWC 2018 참석차 실무진과 함께 상하이를 방문한 황창규 KT 회장은 중국산 5G 장비를 쓸 것이냐는 질문에 묵묵부답했다. SK텔레콤은 아예 이번 MWC 2018에 CEO는 물론 통신장비 관련 인력을 파견하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냈다.
세계 무선 통신장비 시장점유율 1위(28%) 업체인 화웨이는 국내 5G 장비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다. 5G 장비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바탕으로 우리 정부와 이통사에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보안 이슈를 거론하면서 미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화웨이를 견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어 장비에 도청과 정보 유출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 숨겨질 수 있다는 우려를 오래전부터 제기해 왔다. 화웨이가 민영기업이지만 유사시 중국 정부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 국방부의 경우 해킹 가능성을 이유로 미군기지에서 화웨이와 ZTE의 휴대전화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는 LG유플러스조차 주한미군의 정보유출을 문제 삼은 미국 정부의 우려로 제한적으로 장비를 도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가 삼성전자보다 1분기 정도 기술력이 앞서고 가격도 30% 정도 저렴해 가성비 측면에서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통신 외적인 부분이 이슈화되면서 화웨이 선택에 장애물이 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