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돈과 양심의 교환

입력 2018-06-1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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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 온라인뉴스부장

법학자인 유리 그니지와 알도 루스티치니는 벌금이 사람들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이스라엘의 하이파 지역에 있는 10개의 사설 탁아소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이들 탁아소의 운영 종료 시각은 오후 4시로, 부모가 이 시간보다 늦게 아이를 찾아가는 경우는 한 달에 평균 8회가량이었다. 실험을 위해 탁아소를 두 개의 집단으로 나눴다. A집단에는 아이를 10분 이상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10셰켈(약 3달러)의 추가 요금을 물리기로 했다. 반면, B집단에는 이전과 같이 운영하기로 했다.

벌을 주거나 벌금을 물리면 나쁜 행동이 억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하이파 지역의 탁아소에서 벌어진 반응은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벌금을 물리기로 한 A집단은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부모들이 전보다 3배나 늘어났다. 물론 종전처럼 운영했던 B집단은 계속 이전과 같은 추세를 보였다.

왜 이런 결과가 생겼을까. 돈으로 양심을 교환하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벌금을 물리기 전에는 부모들이 아이를 늦게 데려가면서 선생님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했다. 그래서 어지간한 사정이 아니면 제 시간에 아이를 데려가려고 노력을 했다. 사회적인 규율과 도적적인 양심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벌금을 물리기로 하자, 이런 미안한 마음은 금세 자유를 찾았다. 그리고 벌금은 마치 탁아소 직원들의 연장 근무에 따른 계약적인 대가로 바뀌었다. 부모들은 “야근을 신청하고 추가수당을 받는 것이 아이를 늦게 데려가는 벌금 10셰켈보다 나은데? 탁아소도 그만큼 대가를 받으니 그쪽도 좋은 일이지”라며 돈과 양심이라는 사회적인 규율을 교환했다. 그래서 추가 요금을 물리기로 하니 오히려 마음을 놓고 아이를 아예 늦게 데려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실험 이후에 벌어졌다. 연구자들은 두 집단에 실험 종료를 통보하고 규칙을 이전으로 돌렸다. 그러나 A집단은 그 뒤에도 여전히 3배 높은 지각률을 기록했다. 한 번 파괴된 규칙은 쉽게 복원되지 않았다.

탁아소 실험이 제시하는 교훈은 명확하다. 양심과 상식에 의거하는 사회적인 규율이 작동할 때 사회는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잘못을 비용으로 쉽게 치환할 수 있는 사회는 미안함을 잃고 뻔뻔스러워진다. 한 번, 두 번의 사례가 쌓일수록 양심과 상식에 의해 움직였던 구성원까지 영향을 미친다. 특히 그 사례 주인공의 사회적인 지위가 높을수록, 경제적인 부가 많을수록 그 영향의 파장도 커진다.

지난 십수 년간 기업의 모습이 그랬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경영진의 갑질부터, 분식회계와 같은 회계 부정, 협력사 쥐어짜기, 권력에 뇌물 쥐여 주기 등…. 걸리면 그뿐이다. 휠체어에 올라 검찰에 몇 번 출석한 뒤, 잠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사재의 통 큰 사회환원이란 세 가지 과정을 차례로 밟으면 대부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한때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존경하는 기업과 기업인을 설문 조사하는 일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일까. 설문은 이제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 질문을 바꾸었다. 과거보다 존경할 수 있는 기업과 기업인을 찾기 어려워졌나 보다.

“어디가 돈 많이 주냐가 제일 중요하죠. 간판도 물론이고요. 아, 요즘은 그중에서 일이 적은 곳이 최고 인기예요. 워라밸 아시죠? 워라밸.”

지난 명절에 취업 준비 중이라던 친척에게 들었던 말이 기억난다. 기업에게 기대하는 가치가 너무도 가벼워졌음을, 이보다 더 잘 축약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산업에서 ‘세계 1위’, ‘세계 최초’는 하나의 신앙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신뢰와 정직, 고용 평등, 사회 공헌 등을 실천하는 존경받는 기업이 필요해진 시대다. 우리사회 역시 그러한 기업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 많이 팔아 많이 버는 게 덕목이라고 말하기에 앞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주목하는 기업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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