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때의 서화가 정섭(鄭燮·1693~1765, 호는 판교板橋)이 그린 석란도(石蘭圖:돌과 난초를 함께 그린 그림)에 붙인 제화시(題畵詩)로 전하는 시가 있다. 石性介而堅 蘭心和且靜 蘭非依不生 石却依蘭定. 비교적 어려운 한자만 훈독하자면, 성품 성(性), 굳셀 개(介), 굳을 견(堅), 난초 난(蘭), 또 차(且), 고요할 정(靜), 아닐 비(非), 의지할 의(依), 오히려 각(却), 정할 정(定)이다. “돌의 성질은 굳세고 단단하며 난초의 마음은 평화롭고 고요한 것, 난초는 돌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네. 그런데, 돌의 모습은 오히려 난초에 의해서 정해진다네”라는 뜻이다.
부드럽고 연약한 난초는 땡볕 아래서는 살 수 없다. 적당한 그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돌 틈에 기대어 돌의 보호를 받으며 산다. 이런 난초를 보호하는 굳센 돌이 의젓해 보인다. 그러나 난초가 없는 돌은 또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돌이 그처럼 의젓한 것은 부드러운 난초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흔히 남편은 돌에 비유하고 아내는 난초에 비유한다. 굳세고 단단한 돌이 우위인 것 같지만 난초가 없이는 돌은 아름답기가 쉽지 않다. 스승은 돌이고 학생은 난초다. 부모는 돌이고 자식은 난초다. 돌은 난초가 땡볕을 받지 않도록 잘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난초는 난초에 의해서 돌의 모습이 정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난초 때문에 돌이 추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회담과 협상은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과 약한 듯이 양보하는 사람 사이에서 성사된다.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만이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약한 듯이 양보한 사람이 오히려 실리를 얻는 경우가 많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어느 쪽이 돌이고 어느 쪽이 난초인지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서로가 필요한 상대인 것만은 분명하니 북한과 미국이 돌과 난초의 역할을 번갈아 하며 앞으로도 대화가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