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대한항공을 빼앗는다고?

입력 2018-06-0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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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예상대로 법원과 판사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야당 원내대표를 한 대 때린 사람은 제꺽 구속하고, 오랫동안 피해자 11명에게 24차례 폭언 폭행한 혐의자는 풀어준 게 사법정의냐는 것이다. 최근 불거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거래’의혹까지 더해져 사법부도 한통속이라거나 적폐청산 대상이라는 댓글이 넘친다.

그의 딸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폭행’이 드러난 4월 이후, 사람들은 이 대한항공의 ‘국민 밉상들’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어쩌면 세 모녀가 하나같이 저 모양인가’, ‘다들 정신병자야’, ‘저런 것들은 감방에 처넣어 정신 좀 차리게 해야 돼’, 이게 일반적인 정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사법부가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혐의를 입증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 모녀의 갑질과 폭행에다 조 회장 아들 조원태 사장의 부정 편입학 의혹, 탈세와 밀수 혐의까지 겹쳐 ‘조갑질 일가’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대한항공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병으로 타계한 구본무 LG 회장의 바른 심성과 소통경영이 알려져 대비되자 “대한항공을 (뺏어서) LG에 주자”는 말까지 나왔다.

민간 사기업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농담으로도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대한항공을 빼앗으려는 음모설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오너일가 퇴진을 주장하는 대한항공직원연대를 민노총이 조종하고 있다는 게 대한항공 측의 주장이다. 정권 차원에서는 예전 김대중 정권과의 악연으로 인해 현 정부와도 원활한 관계가 아닐 것이므로 대한항공 탈취 시도가 있다면 방조 또는 방관할 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음모설 중 고약한 것은 중국공산당 배후설이다. 대한항공은 단순한 항공 운송 회사가 아니라 우리 국군 항공전력은 물론 주일, 주한 및 그 주변 미군 항공전력의 최전선 정비창이며 복합 방위산업체라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넘어가면 누가 좋아지겠느냐, 그러니 넘어가더라도 군사부분만큼은 꼭 분리해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항공에 대한 조직적 공격은 단순히 갑질 을질 차원의 일이 아니라는 시각이다.

묘한 것은 음모론에 대한 시각이 촛불 세력, 태극기 세력이 대립할 때처럼 두 쪽으로 갈리는 점이다. 대한항공 처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기업과 재벌 전반에 대한 시각차로 커지고 있다.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조양호 회장이다. 자신의 거취와 새로운 기업경영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경영권을 통째로 내놓고 물러가라는 것은 온당한 요구가 아니다. 리더십을 교체해야 하는 것은 맞다. 소유와 경영의 합리적 분리 방안을 찾는 게 좋다고 본다.

지난달 경영쇄신안을 발표한 한화는 준법경영위원회 신설 계획을 밝혔다. 누가 위원회를 맡느냐, 위원회에 대해 오너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지만 윤리경영을 위한 의미 있는 진척이다. 조 회장의 경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으로서의 역할만 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에도 누구를 새로운 경영자로 선임해 공감할 수 있는 리더십을 창출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이 대목에 중지(衆智)가 필요하다.

조 회장은 1999년 취임 이후 매출을 2배 이상, 영업이익을 50배 가까이 늘렸을 만큼 경영능력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게 정말 대단한 실적이며 그가 아니면 불가능했을까.

2019년은 대한항공 창립 50년, 조 회장 취임 20년이 되는 해다. 새로 태어나는 해로 삼을 만하다. 이제 주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경영권 승계도 어려워진다. 대한항공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업계와 국민들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대한항공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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