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필리핀인들을 대한항공 연수생으로 가장해 입국시킨 뒤 가사도우미로 고용했다. 출입국당국에 따르면 한진그룹 사주 일가는 10여 년간 20여 명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데려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부의 평창동 자택과 조 전 부사장의 이촌동 집에서 각각 일을 시킨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조양호 회장 일가는 대항항공을 사실상 사유화하고 직원들에 대해 갑질한 것도 모자라,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가사도우미 한 달 급여 40만~50만 원마저도 개인 돈이 아닌 회삿돈으로 주는 추접함을 보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사건이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에 투입하는 올해 예산은 30조 원을 넘겼다. 한 해 신생아 수(32만~33만 명 추정)를 감안하면 신생아 1명당 9200만~9500만 원을 쓰는 셈이다.
신혼 부부, 맞벌이 부부가 자녀 갖기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육아와 가사 부담이다. 그런데 신생아 한 명당 1억 원꼴로 쓰고 있는 정부 예산 중 한 달에 40만 원, 1년에 500만 원이면 신생아 출산 가정에 24시간 상주 가사도우미를 정부에서 고용해 지원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24시간 상주하는 가사 도우미를 어떻게 월 40만 원에 고용하느냐”, “외국인 근로자 착취 아니냐” 등의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사례와 같이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필리핀 정부 차원에서 해외근로 지원 사업으로 벌이고 있는 정책이다.
중동이나 싱가포르 심지어 1년 GDP 1만 달러 전후인 말레이시아에서도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월 40만~50만 원에 합법적으로 고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미얀마 등 국가의 가사도우미들은 에이전트 회사들과 개별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월 40만 원 이하에 고용되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은 국가 차원에서 가사도우미를 보내는 상대 국가와 최저임금 협상을 벌여 월 40만~50만 원에 고용되게 하고 있다. 즉, 저임금 착취 우려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신생아 출산 30만 가정에 24시간 상주 가사도우미 고용을 위해 연 500만 원을 지원하면 1조5000억 원, 저출산 대책 예산 30조 원의 5%에 지나지 않는다. 신생아 1명당 1억 원의 정부 예산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500만 원이면 육아와 가사 부담을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현재 국내 현행법상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외국인은 재외동포(F-4 비자)나 결혼이민(F-6) 등 내국인에 준하는 신분을 가진 이들로 제한돼 있지만, 강남이나 일부 부유층에서는 월 150만~200만 원에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다.
규제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이다. 규제로 인해 그에 따른 리스크 비용이 발생해 월 40만~50만 원에 고용할 수 있는 가사도우미를 150만~200만 원에 고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실제 손에 150만 원을 쥐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세 자녀를 키우고 있다는 한 여성은 "저출산 해결을 위해 수십조 원이 쓰였다는데 도대체 그 혜택은 어디에서 받는지 모르겠다. (아이 낳으면) 혜택이 있다는데 누리는 국민이 많지 않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런 부모들의 간절함을 간파한 한 지방 구청장 예비후보는 공약으로 신생아 도우미 파견 사업을 내놓았다. 일주일에 2~3일씩 하루 4시간 정도 신생아 도우미 인력을 파견, 산모들에게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고 아이들의 건강도 체크해 주는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일주일에 2~3일 하루 4시간으로는 부족하다.
연 30조 원 저출산 예산 중 5%만이라도 실대상자들에게 실제 수혜가 가도록 하자. 주식시장의 저출산 관련 기업들까지 살릴 수 있는 이 대안은 체감할 수 있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황망한 갑질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발상의 전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