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객과 만날 때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중국이 이른바 ‘반도체 굴기(倔起)’에 나서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 여기에 한국 경제가 반도체라는 특정 산업에 너무 의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담긴 질문일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1~2년 내에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 구도가 이미 상위권 3개 업체 위주로 재편되어 신규 진입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데다, 한국 수출 구성도 특정 산업이 흔들린다고 해서 함께 무너질 정도로 허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과점’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2011년 1분기, 세계 D램 시장의 점유율을 살펴보면,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63%를 점유하고 있었지만, 일본 엘피다와 미국 마이크론도 각각 13%와 11%라는 적지 않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만의 난야(南亞) 등 수많은 기업들이 5% 내외의 점유율을 다투는 등 경쟁 강도가 꽤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8년 1분기 D램 시장의 모습은 7년 전과 다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73%로 상승했다. 3위인 미국의 마이크론(23%)까지 포함한 이른바 ‘빅3’의 점유율은 96%에 이른다. 일본의 엘피다가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되고, 난야를 비롯한 대만의 경쟁자들이 몰락하며 D램 업계는 이제 몇몇 업체가 시장을 지배하는 ‘과점’ 구도로 재편됐다.
과점 구도가 형성되면 새로운 경쟁자의 시장 진입은 매우 어려워진다. 선두 기업들이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달성, 새로운 경쟁자에 비해 매우 저렴한 값에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능력을 갖기 때문이다. 신규 진입 기업은 선발주자를 따라잡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리고, 또 언제까지 투자해야 할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4~5위 기업이 이미 사라졌기에,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신기술을 습득할 방법이 사라진 것도 또 다른 장벽이다.
다음으로 반도체에 대한 지나친 의존 문제를 보자. 지난해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 산업은 17.1%를 차지, 단일 품목 기준 1위를 기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석유 및 화학공업 제품(이하 석유화학제품)을 합쳐 보면 18.6%로 반도체 산업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석유제품 6.1%, 화학공업제품 12.5%).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2012년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비중은 무려 21.9%에 달했다. 2014년 이후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비중이 크게 떨어졌지만, 한국 경제에 심각한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한국 반도체 수출 통계에는 착시도 있다. 2004년 반도체와 함께 수출 1위를 다투던 정보통신기기 수출 비중이 감소(10.3%→3.9%)한 이유가 생산설비의 해외 이전에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국내에서 ‘배송’되던 것이 생산설비의 해외 이전으로 인해 이제는 ‘수출’로 분류된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휴대폰의 핵심 부품 수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최근 반도체 수출은 휴대폰 생산설비 이전 효과 때문에 부풀린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1~2년 내에 큰 성과를 내기는 힘들다. 이미 시장이 과점 구도로 재편되어 신규 진입자가 성과를 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의 위상이 매우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외에 석유화학이나 정보통신기기 그리고 자동차 등 다른 산업들이 그에 못지않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의 조선 수주에서 확인되듯, 반도체 이외의 산업도 회복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망하며 한국 경제가 무너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나아가 지난해 코스피200 기업들이 무려 178조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데 이어, 2018년에는 200조 원 이상의 이익을 낼 것으로 기대되는 점도 긍정적이다. 막대한 이익을 잘 활용해 기술 투자를 늘리고 환경 악화를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한 유동성을 비축한다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3~4년 뒤에는 어찌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새로운 경제 위기가 출현할지도 모르고 철벽 같아 보이던 ‘진입 장벽’도 돌발변수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못 보는 상황에서, 먼 훗날의 일을 지금 고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또 3~4년 뒤의 일은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대비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