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의 가치를 '자의적으로 판단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에는 5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 판단의 격차에서 출발한다. 회계법인은 에피스의 공정가치를 4조8086억 원으로 평가했지만 에피스는 2015년은 물론 지난해 감사보고서에서도 향후 영업이익 발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특별감리를 통해 이번 사안을 지적한 금융감독원과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시민단체 등은 이르면 10일 감리위원회에 안건을 회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금융위원회는 검토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16년 10월 말 작성된 삼성바이오로직스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삼성바이오가 2015년 말 안진회계법인에 의뢰해 얻은 에피스의 공정가치 평가 결과는 4조8086억 원이다. 안진회계법인은 위험조정 순현재가치(Risk-adjusted NPV, rNPV) 방법으로 비상장사인 에피스의 값어치를 산출했다. 2016년 상반기 말 한영회계법인이 실시한 에피스 가치평가에서도 같은 산정방식을 통해 4조9342억 원이라는 가치가 도출됐다.
반면 회계법인들의 5조원 가까운 가치평가와 달리 에피스 측은 당분간 이익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2015년 에피스는 재무제표에서 1642억 원에 달하는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하지 않았다. 2012년 설립 후 이월결손금이 2235억 원에 달하는 상황이었지만 향후 10년간 유의미한 이익을 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월결손금을 통해 법인세 감면을 받으려면 결손금 규모 이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합리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
판단 방식에는 법상 특별한 기준이 없으나 회계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전년도 혹은 당해 이익이 발생하고 추세적으로 이익 실현이 기대되는 경우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하고 있다. 한 중소 회계법인 대표는 “이연법인세자산을 인식할 때는 단순 ‘참고용’으로 기업가치를 산출하는 것보다 보수적으로 기준을 잡는다”며 “DCF 등의 방식은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러한 ‘참고용’ 가치평가 결과를 재무제표에 반영했다는 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안진회계법인이 평가한 에피스의 공정가치 4조8086억 원을 2015년 재무제표에 관계기업투자주식으로 재분류해 반영했다. 기존에 에피스를 종속기업으로 평가할 때라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2133억 원 규모 순손실을 냈어야 하지만 에피스의 지분가치가 반영되면서 1조9049억 원 규모의 흑자로 전환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공정가치평가만이 아니라 당시 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2건이 국내 판매 승인을 앞두고 있었던 상황 등을 기준 변경의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삼정회계법인의 감사조서에는 이러한 정황이 담기지 않았다. 에피스에 대해 안진회계법인이 공정가치평가를 실시했다는 점만 명시돼 있다.
한 대형로펌의 증권법 전문 변호사는 “DCF 등을 통해 특정 주체가 에피스 가치를 얼마로 볼 것인지, 투자를 결정할 것인지 등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자유”라며 “다만 이연법인세자산 인식조차 불가능할 만큼 객관적으로 이익 실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참고용’ 자료를 재무제표에 반영한 것은 신의성실을 위반한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재 진행을 두고 당국의 의견도 엇갈리는 상황이다. 1일 이번 특별감리 결과를 발표한 금감원은 10일 감리위원회에 사안을 바로 회부해 다룰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사안이 큰 만큼 검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리위는 통상 3주에 한 번 열린다. 10일 감리위에 안건이 회부되지 못할 경우 31일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감리위 이후에는 다시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결론이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