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재계 관계자는 “재벌그룹 구조상 이 정도의 반박 기자회견은 총수에 보고해서 승인을 받은 사안일 것”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강경 대응을 지시했든, 이를 용인했든 당국과 맞서겠다는 총수의 의지가 반영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최근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 기관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신규 순환출자 금지 가이드라인 번복), 금융위원회(차명재산에 대한 차등 과세), 고용노동부(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 등 정부 기관이 전방위로 삼성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지난 2월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 부회장은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았다. 유럽에 이어 중국 출장을 가는 등 해외 활동만 공개했다. 지배구조 개편압박에 대해서도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을 매각하는 등 정부의 방향에 충실이 따랐다. 이런 이 부회장의 행보는 집행유예 상태라는 법적 불확실성이 감안됐겠지만, 가뜩이나 반(反)삼성 정서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번 분식회계 논란은 상황이 좀 다르다고 이 부회장이 판단했을 수 있다. 최악의 상황으로 상장폐지까지 거론되고 있는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금산분리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유력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는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삼성전자에 팔고, 그 돈으로 삼성생명 지분을 사 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지주비율 강화)이 발목을 잡고 있긴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바이오사업은 삼성의 차세대 성장동력이다. 시가총액도 삼성전자 다음으로 그룹에서 가장 높다. 바이오산업의 장래가 밝은 데다 미국 유명 제약사 등 매출처도 확실해 최근 삼성그룹의 신산업을 견인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는 삼성물산(43.44%), 2대 주주는 삼성전자(31.49%)다. 이런 기업이 분식회계 판정을 받는다면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으로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삼성은 금감원 조사 과정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국내외 최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행정소송으로 갈 때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내부 보고가 이 부회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변한 건 없지만, 정부로부터 삼성 총수로 최근 인정 받았다”며 “이번 사건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이 부회장 입지에도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