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28일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안의 가장 큰 특징은 대주주가 직접 자금을 투입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다는 것이다. 이는 대주주의 희생없이 계열사간 재편을 통해 지주사 전환을 선호했던 다른 기업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다. 이런 ‘정공법’은 나아가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의 보폭을 상당히 넓혀줄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삼성그룹을 포함한 주요 기업은 승계 과정에서 위법성 논란에 빠졌다. 현대차그룹은 재계 전반에 퍼진 이같은 승계 과정의 잡음을 충분히 감안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순환출자’고리가 끊어지면,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 부자를 정점으로 한 지배회사 모비스와 현대차, 기아차 순의 수직계열화 체제가 된다.
이를 위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기아차가 보유 중인 모비스 지분을 사들인다는 계획이다. 매입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정 회장 부자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기아차에 매각하는 등 계열사 지분을 적극 처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지분 매입비용만 4조~4조5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재출연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문재인 정부의 재벌 개혁 정책에 부합한다. 정부는 그동안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와 재벌 순환출자고리 해소를 촉구해왔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 논란의 핵심이었던 현대글로비스가 현대모비스와 합병하는 것은 정의선 체제 구축에 용이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런 수직 계열사 구조에선 현대차그룹은 금융사 지분을 팔 이유가 없다. 계열사간 지분 구조가 명확해지면서 통합감독 규제에서도 일정부분 자유롭게 될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현대건설은 정몽구 회장을 등기 이사에서 제외했다. 이에 앞서 정 회장은 현대제철 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이렇게 되면서 정의선 부회장이 그룹내 최다 등기이사가 된 상태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순환출자구조 개선안이 “승계 과정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룹은 지주사 대신 지배회사(모비스) 방식을 택한 것과 관련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대주주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며 “편법 대신 적법한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