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토니 주트 ‘포스트 워 1945~2005’

입력 2018-03-19 10:55 수정 2018-03-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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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든 전후 유럽

모든 것은 흐른다. 현재와 미래를 보고 살기도 힘겨운 시대에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난제 앞에서 고민할 때는 지난날들을 차분히 점검해 보는 일도 기대치 않았던 지혜를 얻는 방법이다.

역사학자 토니 주트가 쓴 ‘포스트 워 1945~2005’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번영과 쇠락을 제대로 다룬 책이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든 유럽 이야기’라는 부제는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 출간된 지 제법 된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역사적 시행착오를 풍성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제1권은 전후 시대(1945~1953)와 번영과 불만(1953~1971), 제2권은 퇴장 송가(1971~1989)와 몰락 이후(1989~2005)로 구성됐다.

역사책을 대할 때 독자들은 나름의 필요와 시각을 갖고 읽는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침체에 뭔가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바람에 부분적인 답을 제공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삶을 낭만으로 치장하길 원하지만 국가 간 이익이 충돌할 때는 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1941년 9월 독일군이 키예프를 점령했을 때 포로가 된 75만 명의 소련군 병사들 가운데 독일 패전을 살아서 목격한 사람은 2만2000명에 불과하였다. 소련은 860만 명을 잃었으며, 독일의 사상자도 400만 명이나 되었다. 민간인과 군 등 모든 사망자를 다 포함하면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소련, 그리스가 최악이었다.

전쟁이 종전으로 치달을 무렵까지 독일은 전성기를 누렸는데, 저자는 그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너무나 번영한 나머지 독일의 모든 민간인은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물질적 비용에 대한 느낌을 거의 갖지 못했다.” 그러나 패전한 독일의 소련 점령지구에서는 러시아인 아이들이 15만 명에서 20만 명 정도가 태어날 정도로 가혹한 상황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전쟁이 끝나기 이전부터 유럽 대륙에는 계획에 대한 열정이 차고 넘친다. 저자는 이를 두고 “유럽의 정치적 종교였던 계획에 대한 믿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소련은 물론이고 영국에서조차 계획을 향한 열정을 제거하는 일은 어려웠다. 예를 들어, 영국 노동자 지도자인 클레먼트 애틀리는 “잘 계획해서 잘 건설한 도시와 공원, 운동장, 집, 학교, 공장, 상점”이라는 주장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말한다. 일단 어떤 사회에 이런 분위기가 지배하기 시작하면 이를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미 100년 전에 토머스 칼라일은 이렇게 예언한 적이 있다. “어떤 일은 누군가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저절로 벌어질 것이다. 누구도 만족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1947년 유럽을 휘감은 공포의 장막으로 유럽 대륙은 마치 다 익은 과일처럼 스탈린의 손아귀로 들어갈 상황이었다. 미국은 서유럽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막대한 재정을 동원한 마셜플랜(1948~1951)을 실천에 옮긴다. 이런 선상에서 한국도 아시아판 마셜플랜의 도움으로 자유 체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동유럽의 공산화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중부 유럽과 동유럽은 토착 민주주의 전통이나 자유주의 전통이 부재하기 때문에 전체주의 체제의 나락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오랫동안 가져온 역사적 유산 때문이다. 한 사회의 항로는 현재의 성과 못지않게 역사적 유산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증명해 주는 귀한 사례이다.

우리나라가 겪었던 해방 전후사를 염두에 두면서 읽어볼 만한 고전급 역사서다. 역사를 읽다 보면 많은 것들이 반복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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