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영미!” 얼마 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뜨겁게 달궜던 컬링. 한 번의 실투로 승부가 갈리는 만큼 경기 내내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강한 스위핑과 팀워크가 요구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로봇이 한다면?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인공지능(AI) 로봇과 인간이 컬링 대결을 펼쳤다.
◇인간과 로봇의 컬링대결 결과는= 4명의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선수들과 2대의 AI컬링로봇 ‘컬리’가 컬링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컬링은 일반 바닥이 아닌, 빙판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경기를 치른다. 때문에 빙판은 기온, 습도 등 그날그날에 따른 날씨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도 실시간으로 상태가 변한다. 그만큼 AI를 통한 제어가 어렵다는 얘기다.
움츠렸던 컬리가 목을 길게 들었다. 투구를 하기 전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목을 쭉 빼니 높이가 2m 20㎝에 달했다. 86Kg의 컬리가 던질 곳을 확인하고 힘 조절을 끝낸 뒤 빠르게 얼음위를 미끄러졌다.
춘천기계공고 컬링팀은 경기 전만 해도 컬리를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빙질을 읽고 투구 방향을 조절하는데 컬리는 사람만큼 민첩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스위퍼까지 없기 때문에 한번 투구한 스톤의 방향을 중간에 바꿀 수 없다는 불리함까지 있었다.
오전에 열린 연습경기에선 컬리가 1대0으로 춘천기계공고팀을 물리쳤다. 시간이 갈수록 컬리의 정확한 투구 능력에 고등학교 선수들은 허를 내둘렀다. 온도가 낮은 빙판장이었지만 땀이 흘렀다. 감정이 없는 컬리는 한 차례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컬리가 인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총 2엔드로 진행한 실제 경기에선 1엔드는 춘천기계공고팀의 스위퍼를 껴서 했고, 2엔드는 스위퍼 없이 컬리와 동일한 조건으로 승부를 펼쳤다.
본 경기가 시작되자 춘천기계공고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심기일전한 그들의 샷은 정확했다.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자 빙질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고, 컬리가 이를 파악하고 투구를 결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 결과 1엔드 1대0, 2엔드 2대0으로 춘천기계공고팀이 모두 승리했다.
춘천기계공고팀은 승리했지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생각보다 로봇이 게임을 잘했다. 한 샷을 일정하게 놓는 것과 로봇의 기술이 너무 다양해서 당황스러 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 개발 기간 반년, 세계 최초 컬링 로봇… 내년 스위핑 로봇까지 나오면 정확성 높아져=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4월 공모를 통해 컬링로봇 개발 주관기관으로 고려대학교 컨소시엄을 선정해 같은 11월 기술개발을 완료했다. 컨소시엄은 AI 기술을 적용, 최적의 컬링스톤 투구 전략을 만드는 컬링 소프트웨어인 ‘컬브레인’과 AI 컬링로봇인 ‘컬리’를 개발했다. 컬브레인과 컬리를 개발하기 위해 고려대, 울산과학기술원, 엔티(NT)로봇 등 8개 기관 60여 명의 연구원이 참여했다.
컬링로봇은 헤드(Head)부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경기 상황을 인식하고, 딥러닝 학습 기반으로 투구 전략을 스스로 수립해 빙판 위에서 경기를 수행한다. 딥러닝을 위한 학습데이터베이스는 국제컬링경기 기보를 활용했다. 총 1321 경기, 1만1000엔드, 투구 수로 따지면 16만 샷에 달한다.
그 결과 원하는 위치에 스톤을 놓는 드로우(Draw)의 성공률은 65%를 넘고, 상대 팀의 스톤을 쳐내는 테이크아웃(Take-out) 성공률은 80%에 이르는 실력을 갖추게 됐다.
컬링 경기에는 투구자(스톤을 투구하는 사람)와 스킵(팀의 주장, 스톤 위치 결정) 역할을 하는 두 대의 컬리가 사용된다. 스킵 카메라를 통해 경기 상황(경기장, 스톤)을 인식한다. 인식된 결과를 AI 소프트웨어인 컬브레인에게 전송한다.
컬브레인은 이를 토대로 최적의 투구전략을 설정해 투구 로봇에 전송한다. 투구로봇은 투구에 필요한 힘과 방향 스톤의 컬 회전을 제어해 스톤을 목표지점으로 투구하는 역할을 한다. 투구를 하는 컬리는 카메라가 두 대다. 목에 달려있는 카메라는 투구 전 목을 길게 빼서 높은 각도에서 자기의 방향과 위치를 인식한다. 이후 목을 컬리 아래쪽에 있는 카메라를 통해 투구 라인을 인식하고 정확하게 투구한다.
컬리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한 AI 컬링 로봇이다. 실시간으로 빙질이 변화하는 빙판 환경에서 경기를 수행해야 하므로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기존에 바둑을 두는 알파고보다도 고차원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컬리 개발에 참가한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는 “구글의 ‘알파고’는 인공지능이 수립한 착수점에 사람이 바둑을 둔다. 반대로 컬리는 AI 소프트웨어인 컬브레인과 하드웨어인 ‘스킵·투구로봇’이 상호 연결해 경기를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투구 힘, 방향 제어 등 하드웨어 기술력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컬링 경기가 빙판에서 열리는 점도 난제다. 경기장의 온도, 습도, 정빙 정도 등에 따라 빙판이 불규칙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컬리가 경기 도중 이를 읽는 것이 쉽지 않다.
이 교수는 “컬리는 실제 경기 30분 전부터 몸을 풀면서 빙질에 대한 감을 익힌다. 그 결과를 토대로 실제 경기에서 스톤의 방향과 세기 등을 결정하는 척도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현재 고려대 컨소시엄팀은 움직이면서 스위핑을 할 수 있는 컬링 로봇을 개발 중이다. 이르면 올해 말 개발이 마무리된다. 이 교수는 올해 말까지 스위핑을 할 수 있는 스위핑 로봇을 개발하면 기술력이 보다 고도화돼 인간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