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본의 잇따른 자국 기업 사냥에 독일 정부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독일의 첨단기술을 빼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지리자동차가 메르세데스-벤츠를 거느린 다임러의 지분 9.7%를 90억 달러(약 9조6525억 원)에 매입해 최대 주주가 됐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독일 정부가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26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브리기티 지프리스 독일 경제장관은 이날 현지 일간지 한델스블라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지리 투자를 막지는 않겠지만 예의 주시할 것”이라며 “독일은 개방경제이며 투자를 환영한다. 단 이는 시장질서와 부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독일의 이런 개방성을 다른 국가가 자국의 산업정책 이익을 위한 관문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종을 울렸다.
지프리스 장관의 경고는 중국 기업들이 외국 투자를 통해 유럽 경제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BBC는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유럽연합(EU)이 해외 투자에 대해 중국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개방적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리슈푸 지리 회장은 성명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전기자동차업체가 되는 길에 다임러와 동행하고 싶다”며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투자는 ‘전략적 비전’에 따른 것”이라며 “21세기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도전하는 경쟁자들은 자동차 부문이 아니라 다른 산업에 있다. 기술을 한층 끌어올리고 성공하려면 친구, 파트너, 제휴 관계는 필수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다임러는 신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왔다”며 “신에너지 자동차와 온라인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독일 업체와 협력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지리차는 스웨덴 볼보의 모회사이며 지난해 40억 달러를 들여 볼보상용차 지분 약 8%도 인수했다. 또 영국 스포츠카 업체 로터스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독일은 중국 기업의 잇단 투자에 강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2016년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그룹의 쿠카 인수다. 독일 최대 산업용 로봇업체 쿠카가 중국 자본에 넘어가면서 최첨단 기술이 유출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같은 해 중국 푸젠훙신투자기금이 반도체 업체 아익스트론을 인수하려다 안보 관련 기술이 중국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미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된 일도 독일 정부의 경각심을 키웠다.
독일 정부의 반발과 우려에도 중국 자본의 현지 기업 사냥은 멈출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조명회사 무린썬 등 중국 컨소시엄은 오스람의 가정용 조명사업 자회사 레드번스를 4억 유로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독일 정부는 최근 국유기업 중국강연과기그룹(CISRIG) 자회사가 자국 항공기 부품 제조업체 코테자(Cotesa)를 인수하는 안에 대해 해외 거래 관련 법에 부합하는지 조사해야 한다며 보류시켰다.
독일은 자국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중국 자본의 접근에 EU 국가 중에서는 처음으로 해외 M&A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그러나 독일 현행법에서 정부는 지분이 25% 이상일 때만 개입할 수 있다.
다임러가 지리의 투자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다임러는 지난 주말 중국의 다른 자동차업체 베이징자동차(BAIC)와 공동으로 19억 달러를 투자해 현지에 전기차를 포함한 벤츠 차종을 생산하는 새 공장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