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과징금이 수백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과징금 부과 규모가 작은 것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공정위는 표시광고법상 허용되는 최대 과징금 부과율을 적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1개 당 판매가는 3000~4000원 수준이어서 제품 출시일(2002년)부터 산정할 때 SK케미칼, 애경, 이마트 3사 합산 총 매출액 규모는 약 74억 원 수준이다.
환경부의 동물실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가습기살균제의 인체 위해성을 인정한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 공정위는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역학조사를 통해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ㆍ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ㆍMIT)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피해사실이 확인된 만큼, 인체 위해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심판정에 직접 참고인으로 출석한 환경부의 관련자로부터 역학조사 결과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환경부의 동물실험은 CMITㆍMIT 가습기살균제가 어떠한 기전으로 피해를 유발하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로, 동물실험은 위해성을 평가하는데 있어 보강자료가 될 수는 있으나,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위해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공정위는 밝혔다.
공정위는 "앞으로 향후 제품의 인체 위해성과 관련되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역학조사 결과가 있다면, 역학조사 결과를 우선해 제품의 위해성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당시 공정위는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하면서 2016년 8월 31일자로 애경과 SK케미칼의 공소시효(행위종료일로부터 5년)가 만료됐다고 했음에도 이번에 고발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 대해 공정위는 재조사 과정에서 2013년 4월 2일 가습기메이트 제품이 판매된 기록을 확보함에 따라, 이를 표시ㆍ광고행위의 종료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소시효를 올해 4월 2일까지로 보고 고발을 결정한 것이다. 이마트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완성됨에 따라 고발에서 제외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은 2002년 10월부터 2013년 4월2일까지 CMITㆍMIT 성분이 포함된 홈클리닉 가습기메이트를, 애경과 이마트는 2006년 5월부터 2011년 8월31일까지 이마트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했다.
앞서 공정위는 한 차례 이 사건을 조사했지만, 2016년 8월 사실상 무혐의인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렸다. 공소시효가 지났고 CMITㆍMIT에 대한 인체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2016년 11월 공정위 심판관리관실은 공소시효 기산일을 연장할 가능성이 있어 이 사건을 재심의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공정위 전원회의 위원들은 같은 해 12월 비공식적으로 재심의 여부를 논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린 뒤 상황 변화가 크지 않아 재조사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후 관련 내부 문서를 다 읽어보고 관련 실무자를 면담해 여러 문제를 직접 확인했다"며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2016년 소회의에서 판단한 결론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반성했다.
김 위원장은 "무엇보다도 먼저 소비자정책의 주무기관으로서 공정위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막중한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통렬히 반성한다"며 "특히 피해자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김 위원장은 "오늘 결정한 사안을 말씀드리지만, 이것만으로는 공정위의 역할과 책임을 다 완수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며 "향후 법률이 허용하는 관련 자료를 소송이나 피해구제 절차를 진행하는 분들에게 충실히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 측은 이번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2016년 공정위 사무처 심사보고서에서 331억 원 한도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으나 이번에 발표한 과징금은 공정위 내부 보고서의 0.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피해자가 이달 9일 현재 5988명 신고됐고, 이중 사망자가 1308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라며 "정부가 학회에 의뢰한 연구용역으로 추산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30만~50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드러난 피해가 전체의 1~2%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 사건의 실체가 여전히 가려져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