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 참 많다. 악수도 손으로, 모형을 그릴 때도 손으로, 대화를 나눌 때도 손을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강의를 할 때도 습관적으로 손동작을 많이 하는 편이다. 밥도 손으로 먹고 차(茶)도 손으로 마신다. 남의 시선을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부빌 때도 남이 바라볼 확률이 높다.
가능한 한 손을 앞으로 내미는 일을 줄이지만 손이란 주머니 안에만 있다면 쓸모가 없는 것 아닌가. 무의식적으로 손은 나오고 행동하고 밖으로 나와 일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러니 남들이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지만 손의 관절이 툭툭 불거져 나와 내 나이보다 두 배는 늙어 보인다. 좀 예쁘게 보이려고 마사지도 하고 문질러도 보지만 별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그 못생긴 손에 나는 상(賞)을 준다. 2017년을 보내는 12월 31일 일기에 내가 나에게 주는 상으로 내 손을 꼽았다. 1년 동안 책임을 완수했고 참 수고가 많았다는 것이 상의 이유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내가 나에게 주는 상을 받는 게 ‘손’이었던 적이 많았다. 아픈 손으로 인생을 아프지 않게 하려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해 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40권 분량의 책을 썼는데, 그중 절반 이상을 손글씨로 썼다. 일기를 썼고 편지를 썼고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논문도 몇 편 썼다. 말하자면 많은 문을 열어 내가 들어가게 해 준 주인공은 내 손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이기는 것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지는 것으로도 더 성장하듯 모양새가 아름다운 것만 행복이 아니라 투박하고 울퉁불퉁한 것이 행복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내 손인데 내가 눈물겨울 때가 있다. 그러기에 당연하지만 집의 문을 손이 열고 집의 문을 손이 닫는다. 자동차의 문도, 사무실의 문도 모두 내 손이 열고 닫는다. 헤아릴 수 없이 밥을 먹었지만 다 내 손 덕분에 배를 채웠다.
아침에 일어나는 기쁨 하나가 커피인데 그 숱한 커피를 마시며 행복한 것도 다 내 손 덕분이었다. 너무 아픈 내 손이 날 먹여주고 살리고 있는 것이다. 좀 쉬라고 결코 말할 수가 없다. 손은 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손이 더 크게 날 살게 한 것은 따로 있다. 살아오면서 내가 걸어가는 길에 장애(障碍)도 많았고 내 인생 앞에는 매듭도 많았다. 그 장애를 낑낑거리며 옆으로 옮기면서 걸어가게 한 것은 내 손이었고 쉬지 않고 엉킨 매듭을 풀어주었던 주인공도 내 손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닫힌 문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닫힌 문을 여는 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손은 상을 받았다. 많은 시간을 멍 때리고 앉아 있는 내 본성(本性)보다 앞서가는 손이 고맙다. 내 발 또한 그러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