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지난해 5월 새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을 확정 발표했다. 핵심은 보험회사의 부채(고객에게 보험금을 돌려주기 위해 보험사가 쌓는 책임준비금) 평가방식이 바뀐다는 점이다. 원가로 평가하던 보험책임준비금을 시가로 평가하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IFRS17은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약속한 보험금 지급 의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또 수입보험료 등 양적 규모 중심에서 보험사의 장기 회사 가치 중심으로 회계기준이 전환되는 의미도 담고 있다. 보험사들이 몸집만 불려나가던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을 목표로 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존재한다.
반면 보험사들은 자산건전성이 악화될 위험이 있다. 지금까지는 보험 계약의 수입보험료 중 일부를 판매 당시 정한 보험상품별 적립 이율에 따라 부채로 적립했다. 그러나 새 회계기준이 적용되면 보험 계약의 미래 현금 흐름, 보험서비스 제공 의무 등을 현재 시점의 할인율로 평가한다. 이렇게 되면 과거 고금리 상품들을 대향으로 평가한 보험사들은 부채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이에 지급여력(RBC) 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채가 늘어난 만큼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새 회계제도가 도입되면 삼성, 교보, 한화 등 빅3의 RBC비율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또 수입보험료 전체를 수익으로 보던 기존 보험계약 수익 인식 방식과 달리 그해 제공된 보험서비스에 상응하는 보험료만 수익으로 인식하는 방향으로 변경된다.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은 “새 국제회계기준(IFRS 17)의 도입으로 급격한 자본 확충으로 인한 보험사의 경영 부담이 예상된다”고 우려한 바 있다.
때문에 지난해 생보업계는 IFRS17 도입에 대비해 분주하게 자본을 확충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감원 RBC비율 권고치인 150%를 하회하는 보험사뿐만 아니라 200% 안팎의 보험사들도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다.
보험사들은 기존 자금조달 수단이던 후순위채 발행을 비롯해 유상증자, 신종 자본증권 등으로 자금을 수혈했다. 하나생명(500억 원), NH농협생명(5000억 원), DGB생명(550억 원) 등이 후순위채로 자본을 확충했다. 현대해상은 5000억 원, DB손해보험은 499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고 한화손해보험은 300억 원 규모 신종 자본증권을 발행한 뒤 1997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동양생명 5283억 원, ABL생명은 3115억 원을 중국 안방그룹으로부터 유상증자를 받았다. 현대라이프생명은 신종 자본증권 600억 원, 후순위채 400억 원을 발행한 뒤 현대모비스와 푸본그룹으로부터 3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받아 RBC비율을 끌어올렸다. 금감원 제재를 받을 수 있는 100% 아래로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던 KDB생명은 산업은행으로부터 극적으로 3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받아 급한 불을 껐다.
특히 보험사들은 쏟아지는 물량을 국내에서 소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감안해 해외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교보생명은 국내 생보사 중 처음으로 글로벌 신종 자본증권을 발행해 5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 흥국생명도 5억 달러 규모 자금을 해외에서 조달했다.
지난해 상반기 5000억 원의 신종 자본증권을 발행한 한화생명 역시 글로벌 신종 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올해까지 최대 1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할 전망이다.
올해도 보험사들은 자산건전성 확보를 통해 IFRS17 대응 준비를 이어갈 전망이다. 더불어 수익성 확대를 우선 목표로 삼아 해법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이를 위한 체질개선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은 “규제 변화는 회사 전반의 경영체질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며 “판매 채널을 확대하고 고효율, 고능률 중심으로 채널 혁신을 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철영 현대해상 부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수익성 높은 보험 종목의 매출 증대와 손해율, 사업비 지속 개선, 자산운용 수익 확대, 선도적 상품과 서비스 개발, 각 채널 생산성 제고에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