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산업을 지적할 때 비교 대상이 되는 국가가 있다.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프리카 최빈국 ‘우간다’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하면 55배나 차이가 나고, 국가경쟁력 순위도 한국 26위, 우간다 114위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금융산업은 우간다보다 못한 금융 후진국으로 평가된다.
2년 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 중 ‘금융시장 성숙도(Financial market development)’에서 한국은 87위를 기록해, 우간다(81위)보다 여섯 계단이나 뒤처졌다. 지난해 결과는 한국이 전년보다 6계단 상승한 74위를 기록, 우간다(89위)를 앞질렀다. 금융당국은 “WEF 발표가 자국 기업인 대상 설문조사를 토대로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국가 간 비교 지표로 사용하기 부적절하다”고는 하지만, 한국 금융산업은 여전히 ‘우간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간다 때문에 자존심을 구겼지만, 한국 금융산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뒤따라 한다는 지적이다.
◇정권마다 쳇바퀴, 금융산업 사회구조 개선 도구로 인식 =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금융권 홀대론’이 화두가 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낸 공약집에 눈에 띌 만한 금융정책이 없었고, 핵심 금융과제는 모두 서민금융지원 강화에 맞춰진 사례 등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몇 가지 장면이었다.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현 정부의 금융산업이 ‘약탈적 금융’이란 프레임에서 생산적·포용적 금융으로 압축되는 듯 보인다. 다시 해석하면 현 정부도 금융산업을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는 도구로만 인식한 역대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금융에서 시작해 청년희망펀드, 성과연봉제 등 정치권발(發) 산업 기조와 연계된 금융정책을 쏟아냈다. 금융당국이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면 민간 금융회사들은 앞다퉈 동참하며 부산을 떨었다. 이명박 정부도 녹색금융이 화두였다. 그러나 시작은 화려했지만 정권이 바뀌면 순식간에 금융정책 기조가 바뀌는 일이 반복됐다. 이미 금융권에서 자취를 감춘 통일금융, 슬슬 폐기론에 휩싸이고 있는 기술금융, 눈먼 돈으로 인식된 청년희망펀드 등도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금융정책과 상품은 금융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간다만큼이나 한국 금융산업을 부정하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관치’다. 군사정권 시절에 뿌리를 둔 공직자 ‘낙하산’ 관행은 금융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문성과 자격이 결여된 고위 공직자들이 논공행상이나 예우라는 명목으로 금융계의 요직을 차지하며, 이 관행의 피해는 일반 금융소비자들에게 돌아갔다.
◇금융산업 경쟁력 발목 잡는 3치(治) = 한국 금융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적폐에는 △금융당국의 규제 △정치권 포퓰리즘 정책 △강성노조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관치(官治)와 정치권 개입을 의미하는 정치(政治), 노조가 경영에 개입하는 노치(勞治) 등 이른바 3치(治)가 금융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경고이다.
상품 개발에서부터 가산금리까지 하나하나 ‘승인’받고 ‘점검’받는 판에 국제 경쟁력 제고는 언감생심이다. 정부가 과도한 규제에만 매달리니 오히려 금융회사들은 우물안 개구리가 돼가는 상황이다. 수십 년간 관치금융에 길들여진 금융권이 문 정부 들어서는 ‘노치금융’으로 금융권 지배구조마저 흔들고 있어 금융회사의 기업가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은행권은 사상 최대 이익을 달성했다. 그럼에도 국내은행의 순위는 고작 글로벌 60~90위에 불과하다. 더 뱅커(The Banker)지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 100대 은행그룹 현황(Tier1 자본 기준)을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KB금융이 그나마 60위로 최고 순위에 올라 있다. 국내은행은 자본뿐 아니라 총자산, 수익성 면에서도 세계 100대 은행그룹의 하위권(51~100위) 수준에 못 미친다. 수익성의 경우 ROA(총자산이익률)를 보면 한국 은행그룹은 0.4%로 세계 100대 은행그룹의 0.9%, 하위권 수준인 1.0%의 절반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