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세제개편이 내년 초 달러화 가치를 뒤흔들며 금융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새로운 세제안에 따라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소득을 미국으로 송금할 때 혜택을 보게 되면서 최대 4000억 달러(약 432조 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달러화 가치도 크게 요동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이전에는 기업들이 미국으로 해외 소득을 송금하면 최고 35%의 세율로 송환세를 내야 했다. 그러나 새 감세안은 송환세율을 부동산 등 비유동성 자산에 대해서는 8.0%로, 현금과 주식 등 유동성 자산은 15.5%로 크게 낮췄다. 이에 기업들이 해외 자산을 달러화로 바꿔 본국에 들여오면서 달러화 가치가 오르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와 BNP파리바, RBC캐피털마켓 모두 내년 초 달러화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정부 시절인 2004년 말 기업들에 트럼프 감세안과 비슷한 송환세 혜택을 주면서 그 다음 해 기업들이 미국으로 송금한 규모는 3120억 달러에 이르렀다. 주요 1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WSJ달러인덱스도 2005년에 13% 가까이 상승했다.
BoAML은 내년에 미국으로 송환될 자금이 2000억~4000억 달러에 달하며 유로화 대비 달러화 가치는 지난 22일의 약 1.1862달러에서 내년 1분기 1.10달러 선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델텍인터내셔널그룹의 아툴 렐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본국으로 송환하면서 달러화 수요를 창출해 그 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라며 “또 트럼프 감세안은 미국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달러화 매력을 더욱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BMO캐피털마켓은 내년 초 달러화 강세 전망을 이유로 2018년 금값 예상치를 종전보다 1.5% 하향 조정한 온스당 1280달러로 제시했다. 금값은 지난 22일 온스당 1275.40달러를 기록했다. 금과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은 달러화로 표시되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달러화 강세가 유지될지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내년 초 달러화 강세를 예상한 월가 주요 은행 중 RBC를 제외한 대부분이 연말에는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고 WSJ는 전했다. 올해도 연초에는 트럼프 정부의 재정적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였지만 이후 인프라 지출 등 주요 정책이 지연되면서 WSJ달러인덱스가 결국 전년보다 7% 가까이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달러화 랠리를 가장 위협할 요소로 해외 변수를 꼽았다. 예를 들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기가 강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기부양책을 축소한 끝에 결국 금리를 올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추구하는 투자자들이 유로화 자산 매입에 나서게 된다. 이미 올 들어 지금까지 유로화 가치는 달러화에 대해 13% 가까이 올랐다.
JP모건자산운용의 닉 가트사이드 해외 채권 담당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달러화가 내년 초 강세를 보이지만 이후에는 유로화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며 “우리는 2018년 말에 유로·달러 환율이 최대 1.30달러 선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