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더 보기] 인터넷망 이용, 공공성과 시장원리 사이

입력 2017-11-3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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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망 중립성 논란, 국내도 영향받나

◇ 망중립성 원칙이란 = ‘망중립성 원칙(Net Neutrality Rules)’은 버락 오바마 미(美) 행정부가 2015년 도입했다. 인터넷상에서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인터넷 망사업자(통신사)가 데이터의 내용이나 양에 따라 데이터 속도나 망 이용료를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원칙이다. 인터넷망을 공공재로 간주해 SK텔레콤이나 KT 같은 통신사업자들이 구글·페이스북·트위터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발생시키는 데이터 양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망을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 美서 다음 달 망중립성 원칙 폐지 카운트다운 = 21일 아지트 파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은 망중립성 원칙 폐기 계획을 공개했다. FCC의 이번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급증하는 데이터 트래픽 해결을 위해 콘텐츠 사업자도 망 구축비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따른 조치다. 파이 위원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임명한 인물로, 망 중립성 폐기에 찬성해왔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7개월간 망중립성 원칙 폐지에 대한 업계와 학계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 최종 표결은 다음 달 14일 진행된다. 파이 위원장을 비롯해 망중립성 원칙을 폐지하자는 인물들이 FCC를 장악하고 있는 만큼 폐지가 확실시된다.

망중립성 원칙 폐지가 임박하면서 미국 내 망 제공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스, 컴캐스트, AT&T 등 이동통신사와 유·무선 통신업체들은 찬성이다. 그동안 급증하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한 망 투자 비용은 통신사들의 몫이었다. 이들 입장에선 무료로 인터넷망을 쓰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페이스북, 구글, 유튜브 등이 눈엣가시였다. 폐지가 확정되면 통신사들은 특정 사업자로부터 추가 비용을 받을 수 있고 데이터 전송 속도를 제한할 수 있다. 반면 구글, 애플,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의 온라인 콘텐츠 사업자와 소비자 단체 등은 요금 인상과 대기업의 콘텐츠 독점, 혁신 기업 차별 등이 우려된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 망중립성 원칙 폐지되면 소비자 피해 우려 = 망중립성 원칙이 폐지되면 소비자 부담이 늘 것이란 우려가 있다. 특히 폐지를 확정하면서 인터넷 이용의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심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장 원리가 온라인 공간을 지배하면서 당장 온라인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이나 개인 사업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망중립성 원칙이 사라지면 통신사들은 인터넷 속도 등 기존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는 대가로 영세 기업과 개인에게 비용을 청구하고, 부담이 커진 사업자는 자연스레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데이터 사용(트래픽)이 많은 사업자는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거나 아예 중단될 수 있다.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통신사업자에게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이용하는 비용이 증가할 수 있고 정보 격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 통신사 “과장된 공포… 안전장치 있다”= 소비자 부담 증가 우려에 대해 통신사들은 “과장된 공포”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이미 망중립성 지침이 있을 뿐 아니라 전기통신사업법 또한 이용자 이익 저해를 근거로 차단·차별 등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또 우리 정부가 8월 망중립성을 강화하는 ‘전기통신사업자 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 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 기준’ 안도 제정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됐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기보다는 편익이 증가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미국 FCC는 “통신사와 인터넷 업계가 합리적으로 망 이용료를 분담해 일반 소비자 요금을 낮춰 편익을 줄 수 있음에도, 그동안 엄격한 망중립성이 이러한 제휴의 확산을 막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데이터 트래픽 폭증에 따른 비용을 통신사와 소비자가 온전히 부담했다. 하지만 망중립성 원칙이 폐기되면 데이터 트래픽 폭증을 이끌어 온 인터넷 업계도 비용 분담에 참여하게 된다. 통신사들은 트래픽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 경감으로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 국내서도 망중립성 원칙에 대한 미묘한 기류 변화 감지 = 아직 우리 정부나 통신사들은 망중립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선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 망중립성을 강화하는 쪽이기 때문인데, 실제로 유승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망중립성을 강화하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국내에선 통신망의 공공재적 성격을 강조하며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 아직까지 우세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망중립성 원칙 폐지가 현실화되면서 국내에서도 망중립성 원칙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망중립성에 대한 정부의 기류도 달라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전기통신사업법상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 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기준 고시를 망 사업자뿐 아니라 인터넷 사업자 등 플랫폼 사업자들에게도 동등하게 확대 적용했다.

최근 국내에서 불거진 글로벌 플랫폼 기업과 국내 통신사 간 역차별 문제도 망중립성에 대한 의견의 다양화에 일조하고 있다. 지난해 말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 접속 경로를 임의로 변경해 SK브로드밴드 이용자들의 페이스북 접속이 차단되거나 지연됐다. 이 문제로 해외사업자 역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오히려 망중립성 원칙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통신사들은 트래픽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는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트래픽 이용량에 따라 별도의 망 사용료를 과금할 수 있도록 망 중립성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유럽에서도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경우 망 사업자의 트래픽 관리가 가능하도록 시장에 맡기고 있는데, 한국은 8월 차별을 제한하는 세부기준을 마련하는 등 글로벌 움직임과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며 “중립성 완화가 글로벌 추세”라고 말했다.

김범근 산업2부 기자 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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