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의 소신표명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현재의 일본을 ‘국난(國難) 상태’로 규정했다. 그리고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일본의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연설했다. 그런데 이 연설이 부실이었다고 야당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연설 모두에서 아베 총리는 “안정적인 정치 기반 위에서 오로지 정책을 실행하라. 이것이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이라며 중의원 선거에서의 여권의 승리를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긴박한 북한 정세, 급속히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지금 우리나라(일본)는 바로 국난이라고도 불러야 할 과제에 직면했다. 북한으로 하여금 그 정책을 반드시 변경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압력을 한층 강화하겠다. (중략) 모든 사태에 대비한 공고한 미·일동맹의 토대 위에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북한 정세와 일본의 저출산·고령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개헌 문제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연설 안에 담았다. 개헌 문제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임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풀리는 문제로 전략을 세운 듯하다.
그는 저출산과 고령화 극복을 위한 대책으로 “유아 교육 무상화를 한꺼번에 진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내용이야말로 중의원 선거 때의 전략적인 공약이었다. 일본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아베 총리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강조한 이 정책은 여성들의 마음을 잡는 ‘유아교육 완전 무상화’이다.
아베 내각은 5%였던 소비세를 2014년 4월부터 8%로 인상했고 2019년 10월부터 10%로 인상하는 정책을 결정해 놓고 있으나, 야당과 국민들의 반대가 적지 않다. 이에 아베 내각은 소비세 인상분 일부를 유아교육 무상화에 사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 정책은 오히려 야당 측의 ‘사람 중심 정책’인데, 아베 총리는 야당 측 정책을 수행하면서 결과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고 동시에 야당 측을 무력화하는 전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헌법개정 문제에 대해서는 “지혜를 짜내며 함께 어려운 과제에 답을 주자. 그런 노력으로 헌법개정 논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만 언급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연설 원고의 문자수가 약 3500자여서 1989년 헤이세이(平成)시대가 시작된 이래 역대 총리가 행한 소신표명 연설 중 2005년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짧았다고 보도했다.
이런 총리의 연설에 대해 야당 측이 강한 반발과 비판을 가했다.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는 “(아베 총리는) 정권을 담당한다는 에너지를 잃은 것 같다. 패기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걱정스럽다”고 꼬집었고, 무소속모임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는 “매우 담백한 연설이어서 놀랐다”고 평가절하했다.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위원장은 “이어질 임시국회에서 제대로 논의하겠다는 자세가 없다”고 비판했고, 희망의당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郞) 대표는 “내용이나 열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17일 유아교육 등의 무상화를 논의하는 자민당 주최 모임에서 일본의 경제단체 경단련 등이 무상화 재원 일부를 부담하겠다고 협조 의사를 표명했다. 이 자리에서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자민당 부간사장은 “사회 전체에서 육아를 뒷받침하는 국가를 만든다. 3000억 엔을 기업이 부담하는 형태가 되어 길이 보이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교육 무상화에는 2조 엔 정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베 내각의 계산인데, 그중 일부에 대해 재계가 협조를 약속한 것이다.
짧은 연설이었고 패기가 없었다는 비판을 받은 아베 총리였지만, 그는 말대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과 달리 내리막길에 있는 자신의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전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