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세운 미국 제조업의 상징 제너럴일렉트릭(GE)이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구원투수로 지난 8월 등판한 존 플래너리 최고경영자(CEO)가 ‘성역없는 구조조정’을 표방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GE 주가는 최근 이틀간 13% 폭락한 끝에 전날 시가총액이 1552억 달러(약 173조 원)로 줄며 시총 기준 미국 제조업계 1위 왕관을 항공사 보잉(1559억 달러)에 넘겨야 했다. 제너럴모터스(GM)로부터 제조업계 시총 1위 자리를 가져온 지 37년 만에 맛본 굴욕이다.
특히 GE는 지난달 재앙 수준의 어닝쇼크에 이어 지난 13일 125년 역사상 세 번째 배당금 삭감을 결정했다. 동시에 내년 실적 전망을 종전보다 절반가량 하향 조정하고 나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플래너리 CEO가 항공과 의료기기, 전력 등을 핵심사업으로 내세우는 한편 에디슨의 전통이 서려있는 조명과 운송 등 비주력 사업에서는 손을 뗄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투자자들을 더욱 실망시켰다. 이런 수준의 구조조정 계획은 이미 예상된 것인 만큼 시장은 더욱 공격적인 대책이 나올 것을 기대했기 때문.
전문가들은 GE의 이런 비극이 100년 이상 이어져온 전통을 무시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GE가 100년 넘게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지속적이면서도 과감하게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다는 점이 꼽힌다. 그러나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영자로 꼽혔던 잭 웰치 전 회장이 2001년 퇴임하고 나서 GE는 이런 유전자를 잃었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했다.
이는 주가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웰치 재임 기간인 1981~2001년에 GE 매출은 250억 달러에서 1300억 달러로 다섯 배 이상 증가했고 같은 기간 시총은 38배 폭증해 GE는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자리를 물려주기 전까지 세계 최대 시총 기업으로 군림했다. 반면 지난 10년간 GE 주가는 53% 하락했다. 이는 보잉이 168% 오른 것과 대조된다.
이에 비난의 화살은 웰치의 후임이었던 제프리 이멜트 전 CEO에게 쏠린다. 웰치는 1999년 한 콘퍼런스에서 “내 후계자가 향후 20년간 회사를 얼마나 잘 성장시킬지가 나의 성공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결국 그의 가장 큰 실책이 이멜트가 된 셈이다.
이멜트가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웰치 시대의 가장 큰 유산이자 한때 그룹 전체 순이익의 절반을 차지했던 GE캐피털을 매각했으며 미디어와 가전사업에서 철수하고 GE의 본업인 제조업에 초점을 다시 맞췄다. 지난 2011년에는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한 산업인터넷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웰치의 경영전략 핵심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있었지만 이멜트는 그 점이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포브스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JP모건체이스 등 대형 금융기관들이 GE캐피털과 마찬가지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지만 모두 이를 극복했다며 GE캐피털을 몰락시킨 것은 바로 이멜트의 리더십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멜트는 파괴적인 혁신과 환상적인 제품으로 GE를 성장시키는 대신 잇따른 매각을 통해 축소의 길을 걸었다고 꼬집었다.
플래너리에 대해서도 시장은 탐탁치 않아하고 있다. FT는 “플래너리가 단기적인 구조조정에만 매달리면 GE의 영혼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웰치가 취임 초기 ‘중성자탄 잭’으로 불리며 구조조정에 집중했지만 이후 크로톤빌(GE의 리더십개발센터)에서 인재들을 양성하면서 ‘할 수 있다’는 정신을 고취시켰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는 GE에 ‘인재사관학교’라는 타이틀을 붙여줬지만 정작 GE 자체 리더십은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