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투자은행(IB)이 본격 출범했지만, 반쪽짜리 논란이 거세다. 모범자본 활성화를 내세웠던 애초 금융당국의 취지와 달리, 증권사 업무영역 확대를 위한 인가가 폐쇄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 불거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3일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등 자기자본 기준을 만족시킨 증권사 5곳의 초대형 IB 지정 안건을 의결했지만, 초대형 IB의 핵심인 단기금융(발행어음) 업무는 한국투자증권 단 한 곳만 인가를 내줬다.
현재로서는 7월 초대형 IB 인가 신청을 한 5곳 중 4곳의 단기금융업 심사 일정은 ‘오리무중’이다. 이들 4개 증권사의 대주주 적격성, 자본 건전성 등에 대한 심사가 언제 마무리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며, 현재로서는 외환업무만 가능하다.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한 발행어음 업무가 불가능하다 보니 제대로 된 기업금융 업무를 하기는 사실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초대형 IB는 자기자본 4조 원 이상 대형 증권사를 ‘한국형 골드만삭스’로 육성하기 위한 제도로, 모험자본을 조성해 기업의 성장과 투자수익에 기여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이에 당초 증권사들은 초대형 IB 출범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자기자본을 늘렸다.
그러나 7조 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마련한 미래에셋대우는 옵션상품 불완전판매에 발목을 잡혔고, NH투자증권은 재무건전성과 케이뱅크 인허가 관련 의혹, KB증권은 현대증권 시절 불법자전거래로 영업정지를 받은 전력이 문제가 됐다. 삼성증권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검찰에 기소되면서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아예 심사를 보류했다.
이처럼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지 못한 증권사들은 초대형 IB 인가는 받았지만, 제구실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자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증권업계 상당수 관계자는 “애초의 취지대로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한다면 초대형 IB 문턱을 넓혀야 하는데, 출범이 가까워져 오자 오히려 문을 닫고 있다”면서 불만 섞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초대형 IB가 전 정권에서 추진한 사안이었던 만큼, 새 정부 들어 금융환경이 변하면서 증권사 4곳이 희생양이 됐다는 시각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아울러 은행권 눈치 보기라는 세간의 눈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최근 금융혁신위원회나 은행연합회는 초대형 IB의 신용공여가 업권 간 형평성과 건전성 기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강하게 쏟아낸 바 있다.
금융당국의 더딘 움직임과 제한으로 초대형 IB는 결국 ‘반쪽짜리 출범’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전날 초대형 IB를 인가하면서 “생산적 금융은 특정업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