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지정학적 위험이나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하거나 기미를 보이면 시장은 이를 위험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만약 세계 경제에 위기가 도래한다면 북한의 핵 도발과 같은 이벤트보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인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크다고 미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크리스토퍼 스마트 선임 연구원이 주장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가 3.6% 성장하며 내년에는 3.7%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7월 전망치에서 각각 0.1% 상향 조정한 결과다. 주식 시장도 호황이다. 지난달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121년 역사상 최초로 2만3000 고지를 뚫었다. 일본증시도 고공행진 중이다. 닛케이지수는 25년10개월 만에 장중 2만3000포인트를 돌파했다.
당분간은 세계 경제가 이러한 호황을 이어가며 ‘위기’와는 거리를 둘 것이라고 스마트 교수는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에서 밝혔다. 특히 일각에서 우려하는 지정학적 위기는 투자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20세기에 주목할 만한 악재가 일어나고 나서 시장이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는 점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급했던 1941년 12월 7일 뉴욕증시는 10% 급락했다. 그러나 증시는 6주 뒤 공습 전 상태로 회복했다. 1963년 11월 22일 존 F.케네디가 전 대통령이 암살을 당했을 때는 뉴욕증시가 약 3% 하락했으나 바로 다음 날 회복됐다. 2001년 9.11테러 직후에도 뉴욕증시는 약 12% 급락했지만 한 달 뒤 회복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는 세계 지정학적 위험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다. 북한의 핵위협은 세계 13위 경제국인 한국의 경제를 얼어붙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과 교역하는 나라들에 충격을 가한다. 그럼에도, 주요 강대국들은 일관된 입장으로 차분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것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스마트 연구원은 진단했다.
중동을 뒤흔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부패 숙청도 신흥국 경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 사우디 정부는 최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주축으로 권력 체제를 정비하고자 대대적인 부패 숙청을 단행하고 있다. 사우디 정부가 반부패를 이유로 체포한 인사 중에는 ‘중동의 워런 버핏’이라 불리는 알왈리드 빈탈라 킹덤홀딩스 회장도 포함돼 있다. 씨티그룹, 트위터, 리프드 등 글로벌 대기업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큰손이 체포되자 사우디 경제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스마트 연구원는 사우디가 중동 내 주요 수출국으로서 맹주 자리를 유지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오늘날 지정학적 위험은 투자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는 게 아니라 한번 재해석된다고 밝혔다. 그런 면에서 투자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둔 요소는 트럼프 대통령의 존재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확실성 그 자체인 탓이다. 그는 파리기후협약(파리협약)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며 탈퇴를 선언했다. 최근에는 분담금을 이유로 유네스코를 탈퇴한다고 밝혔다. 보호무역주의를 기치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ㆍ나프타) 폐기, 중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과 무역 담장을 높이려 하고 있다.
스마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다른 나라들과 공동의 노력을 하기보다는 제로섬 게임(승패의 합계가 제로(0)가 되는 게임)에 뛰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로섬 게임을 추구하는 트럼프의 행태는 시장이 혼란해지면 공동 대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래 예상현금 흐름을 현재 가치로 할인해 평가할 때 미국은 높은 할인율을 지는 모양새라고 그는 분석했다.
스마트 교수는 경제와 정부정책을 연구하는 하버드대학의 모사바 라마니센터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09~2013년 재무부에서 유럽·유라시아 담당 부차관보로 일했고, 2013~2015년 국제경제, 무역, 투자 부분에서 대통령 특별 보좌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