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전남 보성군 ‘벌교 꼬막축제’를 다녀온 이웃 덕에 꼬막을 배부르게 먹었다. 쫄깃한 식감에 짭조름한 맛이 좋아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지금도 군침이 돈다!). 손이 큰 이 이웃은 충남 논산 강경젓갈시장을 들러 왔다면서 꼴뚜기젓과 밴댕이젓, 낙지젓도 챙겨 줬다. 언제 들어도 재미있는 ‘젓 터져유’ 할머니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논산 강경 장날의 완행버스는 젓갈을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들로 콩나물시루마냥 붐빈다. “깔깔 호호 하하” 웃음을 뚫고 할머니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귀에 꽂힌다. “살살 좀 밀어유. 내 젓 다 터져유.” 민망해 붉어진 얼굴로 버스에서 내리니 젓갈 파는 할머니가 커다란 비닐을 열어 새우젓의 상태를 살피며 또 한마디를 한다. “귀한 내 젓. 다 터질 뻔했네 그랴.” 플라스틱 통이나 유리병이 흔하지 않아 됫박으로 젓을 팔던 시절의 이야기란다.
뜻은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두 말 때문에 생긴 우스개이다. 화자(話者)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민망했던 이유는 ‘젓’을 ‘젖’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음흉한 이들은 머릿속으로 이상야릇한 상상을 했을 수도 있겠다.
‘젓’은 새우·조기·멸치 등의 생선이나, 조개·생선의 알·창자 따위를 소금에 짜게 절여 삭힌 음식이다. ‘젖’은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처음으로 먹는 ‘생명수’이다. 젖을 분비하기 위한 신체 기관인 유방(乳房)을 말하기도 한다. 뜻은 전혀 다르지만 발음이 [젇]으로 같아 젓과 젖을 혼동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젓과 젖은 조사를 만나면 발음이 완전히 달라지니 정확히 소리를 내야 한다. ‘엄마 젖을 먹는 건강한 아기 선발대회’와 ‘새우젓을 담그는 퍼포먼스’는 ‘[엄마 저즐] 먹는 건강한 아기 선발대회’와 ‘[새우저슬] 담그는 퍼포먼스’라고 주의해서 발음해야 한다.
청양고추, 다진 마늘 등을 넣어 양념한 젓갈 세 종류를 올리니 밥상이 풍성하다.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한 고3 작은아이는 “젓갈이 네 종류나 있네요” 하며 맛있게 먹는다. 아빠의 표정이 이상한 걸 눈치챈 이 녀석, 얼른 젓가락을 들어 보이며 “이것도 젓갈이니까요” 한다. 우리말로 먹고사는 어문기자의 딸답다.
젓갈은 뜻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음식을 집어 먹는 데 쓰는 젓가락의 준말이다. 이 경우 ‘-갈’은 가락의 준말로, 숟가락 역시 숟갈로 쓸 수 있다. 젓갈은 [저깔/젇깔], 숟갈은 [숟깔]로 발음해야 한다.
또 다른 젓갈은 젓으로 담근 음식을 뜻하는데, [젇깔]이라고 말해야 한다. ‘젓깔’로 잘못 쓰는 이들이 있는데,‘-깔’로 적어야 바른 말이 많아서이다. 맛깔, 때깔, 빛깔, 색깔, 성깔 등이 그것이다. 이때의 ‘-깔’은 상태나 바탕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소리 나는 대로 써야 바르다.
시인 임동확은 ‘목포 젖갈집’에서 “목포 젖갈집 고집쟁이 아짐은, 젖갈이 아니라 젓갈이라고 해도 한사코 그 가게 이름을 고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아짐의 한마디에 맞춤법은 언어의 문제일 뿐, 그것이 삶을 장악할 순 없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어문기자인 나 역시 ‘아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큰일이다.
“바다에 나는 젖이 젓갈인께 그나저나 마찬가지 아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