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법원장은 25일 열린 첫 기자간담회에서 "'좋은 재판' 실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진심으로 사랑받고 신뢰받을 수 있도록 통합과 개혁의 소명을 완수하는 데 제 모든 열정을 바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식 때처럼 '좋은 재판'을 거듭 강조했다.
임기 6년 간 수행하겠다고 제시한 과제는 △법관 내·외부로부터의 확고한 독립 △적정하고 충실한 재판을 위한 인적·제도적 여건 마련 △전관예우 근절을 통한 국민의 사법신뢰 제고 △상고심 제도 개선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실현 등 총 5가지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제도 개혁 관련 첫 지시로 실무준비단 구성을 제안했다.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을 단장으로, 전국법관대표회의 추천 판사와 법원행정처 소속 심의관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준비단은 법원개혁과제 중 우선 논의 사항을 정하고, 개별 추진방안을 찾은 뒤 주요 활동내역을 외부에 공개할 계획이다.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여부 조만간 결정"=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결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의장 이성복)는 사법행정권 감독 및 감시 기능을 맡기겠다는 게 김 대법원장의 생각이다.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여부는 27일 대법관 회의를 거쳐 결정할 방침이다. 김 대법원장은 전국법관대표회의, 진상조사위원회에 이어 최근까지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등에서 근무 중인 일선 판사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내일은 법원행정처 소속 심의관들을 만난다.
김 대법원장은 내년 2월 정기인사 전에는 고법·지법 인사 이원화 문제, 행정처 인원 축소 등을 고려한 결과물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인사제도가 법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이 제도가 잘 운영돼야 한다는 것은 재판청구권 보장과도 연결되므로 인사제도를 채택함에 있어서는 수요자인 국민 입장도 고려하면서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대법원장도 필요하다면 소수의견 낼 것"=김 대법원장은 필요하다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소수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장이 소수의견을 내는 일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기가 거의 유일했는데, 이 전 대법원장 역시 임기 초반에 소수의견을 내고 점차 줄어들었다.
대법원장이 소수의견을 내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여태까지 관행은 그랬던 것 같다"면서도 "대법원장이라는 이유로 소수의견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지금은 사법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법원장이지만, 재판에 있어서는 13분의 1의 역할에 불과하다"며 "그렇더라도 대법원장이라는 이유로 소수의견에 가담하지 않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생각한다.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장도 분명한 재판… 검찰 비난 적절치 않아"=법원의 잇따른 구속영장 기각으로 불거진 검찰과의 힘겨루기에 대해서는 "영장재판도 분명한 재판"이라며 "재판결과는 존중돼야 한다는 정신이 법치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에 대한 평가나 의견도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낼 수 있다"면서도 "그와 같은 의견을 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정도와 고민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영장을 청구했던 검찰 입장에서는 과도하게 법원을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은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보완하기 위해 "영장항고제나 보석부 영장발부 등 여러 제도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영장은 인신을 구속하는 것이고 기준에 관해서는 여러 차례 회의를 하고 고민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취임 한 달을 맞은 김 대법원장은 지명 초기보다 훨씬 신중한 모습이었다. 소감을 묻자 "밖에서 보던 것과 대법원 안에서 보는게 크게 다르지 않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곤란한 질문에 '고심하고 있다', '다각도로 생각하고 있다', '더 말씀드리기 어렵다' 고 답하는 등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 대법원장은 "제가 원래 행동과 말이 자유로운 사람인데 대법원장이 되고 나서는 지인들과 전화통화도 함부로 못한다"며 "이것 또한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자리라는 걸 잘 안다"고 말했다. 한 시간 내내 서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을 간담회가 마친 뒤에야 주머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