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되, 착공하지 않은 신규 원전 6기 건설을 전면 백지화하는 ‘탈(脫)원전 로드맵’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채 대통령 공약 준수 강박증에 사로잡힌 졸속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2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탈원전’ 정책을 공식화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017년 24기에서 2022년 28기, 2031년 18기, 2038년 14기 등으로 원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전환 로드맵은 발전소 건설기간을 감안하면 10년 후에 효과가 나타난다. 다음 정권에서 전력 수급이나 전기요금 부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전문가는 “전력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지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의사결정 체제를 통해 수십 년간 결정해 왔는데 새 정부는 앞뒤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백년대계’여야 할 국가 에너지 정책을 절차를 무시한 채 성급하게 결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수조 원에 달하는 원전 매몰 비용도 논란이다. 한국수력원자력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신규 원전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금지로 3조 원에 육박하는 피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신규 원전 중단으로 인한 매몰비용을 최대 9955억 원으로 잡을 경우, 정부의 에너지 전환 로드맵으로 약 3조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계산이다.
현재의 ‘경제급전’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탈원전 정책 기조에도 원전 발전 비중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원전을 줄여 나간다고 하지만 전기 공급구조는 그대로이고, 비용이 저렴한 순서대로 전기를 생산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전기요금 부담에 대해 정부가 솔직해져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안전하고 친환경적 에너지로 전환하면 비용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데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조용성 고려대 교수(서울에너지공사 연구소장)는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며 “정권의 지지도가 높을 때 국민에게 솔직히 밝히고 설득해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