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후분양제 추진을 기정사실화하며 관련 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12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공공부문부터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이 선분양제 때문에 많은 주택 소비자가 피해를 본다고 지적하자 이같이 답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간 업계의 오랜 논란거리였던 후분양제 의무화가 또다시 조명받는 형국이다.
선분양제는 국외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방식으로 건설사가 주택을 짓기 전에 분양하는 제도다. 1970년대 주택 보급 활성화를 위해 주택시장에 도입된 선분양제는 주택보급률이 2008년 100%를 넘으면서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부실공사, 분양권 투기, 집값 상승 등을 유발하는 주범으로 지목해왔다.
이에 참여정부는 시공 80% 완료 후 소비자가 직접 주택을 보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후분양제 의무화를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2007년 다양한 규제 정책 시행에 따른 주택 구매심리 곤두박질로 이행을 1년 미루더니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계획 자체가 폐기 처분됐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김 장관은 후분양제 의무화 추진에 신중한 태도다. 김 장관은 “후분양제의 장점에 공감하지만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공공부문 후분양제 시행 로드맵을 만들고 민간 부문은 인센티브로 후분양제를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후분양제 의무화를 반기는 쪽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김 장관의 후분양제 추진에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로드맵 없이 당장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경실련은 “로드맵 수립을 핑계로 ‘하세월’해서는 안 된다”며 “선분양제는 소비자의 선택권 침해, 부실시공 조장, 집값 하락 리스크 전가 등 소비자에게 매우 불리한 제도”라고 평가했다.
반면 건설업계는 후분양제 시행이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김 장관도 후분양제가 주택시장에 미칠 여파를 가벼이 보진 않을 것이기에 민간 영역으로의 확대가 빠르진 않을 것”이라면서 “실제 추진되면 자금력 있는 건설사만 주택시장에 살아남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파트 시공에 나설 ‘총알’ 없는 회사는 주택시장을 떠나 주택 공급량 축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후분양제가 소비자에게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후분양제를 실시하면 집값이 상승한 시점에서 분양가를 책정하게 돼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보증도 필요 없어져 건설사가 눈치 보지 않고 분양가를 올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소비자가 분양가를 나눠 낼 수 있는 선분양제와 달리 후분양제는 주택가격을 짧은 기간에 내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주택 구매 여건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신철 기자 camus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