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이경춘 회생법원장 "P-Plan, 기업 살려 모두 윈윈하는 방법"

입력 2017-09-0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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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다 망가지고 법원 찾으면 뭐하나…회생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이 6일 서울 서초구 회생법원 청사에서 개원 기념 국제콘퍼런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법원장은 “채권자와 채무자가 협의해 사전계획안을 만드는 P-플랜이 결국 기업을 살려 모두 윈윈하는 방법”이라며 “법원 출범 후 6개월 동안 아직 첫 사례가 나오지 않았지만, 1호 사건이 생기면 제도가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동근 기자 foto@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이 6일 서울 서초구 회생법원 청사에서 개원 기념 국제콘퍼런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법원장은 “채권자와 채무자가 협의해 사전계획안을 만드는 P-플랜이 결국 기업을 살려 모두 윈윈하는 방법”이라며 “법원 출범 후 6개월 동안 아직 첫 사례가 나오지 않았지만, 1호 사건이 생기면 제도가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동근 기자 foto@

"'프리패키지 플랜(P-Plan)'은 결국 기업을 살려서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윈윈(Win-Win)하자는 겁니다.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경춘(58·사법연수원 16기) 서울회생법원장은 6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P-플랜 1호'가 들어오지 않는 데 아쉬움을 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채권자가 제 살길을 찾느라 정작 기업이 살아날 길을 외면한다는 지적이다.

◇'P-Plan' 활성화… "채권자 이해 필요" = 3월 개원한 서울회생법원은 P-플랜 활성화를 목표로 꼽았다. P-플랜이란 기업이 채권자와 협의해 사전계획안을 만들어 회생 절차에 들어오는 제도이다. 채무자와 채권자가 미리 의견을 나누기 때문에 회생 성공 가능성이 높다. 회생 절차 개시 뒤 계획안을 세우는 것보다 신속하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10대(자산 기준) 기업회생 사건 가운데 절반이 P-플랜 절차를 밟았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8월 개정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로 P플랜을 도입했으나 사례가 없다. 서울회생법원이 P-플랜 홍보에 나선 이유다.

법원 개원 6개월째를 맞이했으나 아직 첫 사례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 원장은 '채권자들의 이해 부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이 원장은 "기업이 망하더라도 채무자가 자기 채권을 우선 변제받을 방법만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채무자들의 무관심과 비협조가 제도 활성화의 장애물인 셈이다. 이 때문에 서울회생법원은 로펌과 금융기관 등을 상대로 P-플랜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3월 열린 'P-플랜 회생절차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도 그 노력 가운데 하나이다. 이 원장은 "외부의 의견을 다양한 각도에서 듣고 제도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P-플랜 첫 사례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이 원장은 "송인서적이나 솔라파크코리아 등 사례를 보면 P-플랜 전 단계까진 왔다"라며 "낚시로 말하면 '물었다 놨다'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회생 절차를 개시한 태양전지 제조업체 솔라파크코리아는 회생 신청 전부터 계획안을 준비해 개시 결정 직후 사전계획안을 법원에 냈다. P-플랜 요건인 채권자 2분의 1 동의를 받지는 못했으나 P-플랜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원장은 "1호 사건이 생기면 제도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원장은 기업 회생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생절차의 핵심은 기업 재무 건전성 회복이다. 그동안 부실기업 회생은 금융기관 등 채권단 중심으로 진행했다. 금융기관에서 해결하려다가 기업은 더욱 망가지고, 뒤늦게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법원에 들어온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국내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한진해운의 경우 끝까지 버티다가 법원에 들어와 결국 파산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적시에 회생 절차를 신청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원장은 또 "신속한 절차 진행도 중요하다"라며 "절차가 지연되면 낙인 효과가 계속되고 신용이 떨어져 회생 성공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했다.

서울회생법원은 효율적인 기업 회생을 위해 '스토킹 호스(Stalking-Horse)' 매각 방식 등을 도입했다. 스토킹 호스란 인수의향서를 낸 곳과 수의계약을 한 뒤 나중에 최저입찰가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이 있으면 매각하는 방식이다. 수의계약과 공개입찰의 장점을 결합했다. 한일건설과 송인서적 등이 스토킹 호스 방식으로 매각에 성공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다른 해법을 찾고 있다. 이 원장은 "중소기업 회생절차에서 중요한 것은 재정적·인적 지원"이라며 "효율적으로 중소기업 회생절차를 지원하는 여러 방법을 검토 중이다"라고 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연계한 '중소기업 회생 컨설팅' 서비스 등이 그 예다. 회생 절차 신청 전후로 공단에서 비용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교섭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전문성 있는 조정위원이 기업과 이해관계인 사이의 협상을 지원한다. 제3자인 중재자가 채무자와 채권자 의견을 조율해 회생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다. 이 원장은 "전문법원으로서 어떻게 판사의 전문성을 높일지도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국제적으로 역량 있는 법원으로 태어날 것" = 서울회생법원이 추구하는 또 다른 목표는 '국제도산 허브법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신속하고 전문적인 도산 절차로 아시아 지역에서 앞서가는 도산 전문법원으로 태어나겠다는 취지다. 이 원장은 "우리 경제력과 국력이 커지면서 국제사회에 미치는 우리 경제 위상도 높아졌다"라며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 기업과 해외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 모두를 위해 국제도산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회생법원은 이를 위해 '국제도산' 관련 실무 준칙도 만들었다.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이 원장은 "우리 도산제도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라며 “제도의 효율성을 꾀하고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회생법원은 국제도산 분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재생에너지 개발사업을 하는 싱가포르 선에디슨사가 외국 도산 절차 승인을 신청한 지 하루 만에 직권으로 '승인 전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우리 법원이 국제도산 절차를 승인하면 국내에서도 회생계획 수립을 위해 지원을 할 수 있다. 승인 전 명령은 지원 결정의 임시 조치다. 국내 채권자 보호 차원에서 처음으로 국내 채권자들이 참여한 심문 기일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달 14∼15일 이틀에 걸쳐 열리는 국제 콘퍼런스도 노력 중 하나다. 도산제도 관련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회의다. 영국, 미국, 호주, 네덜란드, 중국, 일본 등 6개 국가 도산 전문 법관과 법률가 등이 참석한다. 이 원장은 "도산전문법원으로서 역량을 한층 더 높이고 제도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우리 도산제도 현실을 '진단'받고 다른 나라 제도와 비교해 개선 방향을 고민하겠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서울회생법원이 국제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역량 있는 법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은

서울회생법원 초대 원장을 맡은 이경춘 원장은 전남대 법대 출신으로 1987년 판사로 임관했다. 법원행정처 건설국장과 기획조정실 심의관, 사법지원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쳐 법리는 물론 사법행정에 이해가 깊다. 2010년 인천지법 파산부를 이끌며 다수의 기업회생절차를 처리했다. 2013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으로 회생·파산위원회 위원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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