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값은 내렸는데 살충제 달걀 파문 때문에 사면서도 찜찜해요. 배추값은 또 왜 이렇게 비싸대요? 정말 집에서 닭 키우고 채소 재배해야 할 판이에요.”
30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던 주부 최 모(34) 씨는 채소 코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채소 매대에 써붙여진 배추 한포기 가격은 5980원. 결국 배추를 담지 못하고 빈 카트로 한바퀴를 돈 최 씨는 계란을 카트에 담다가 다시 꺼내 농장 난각 코드를 확인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최근 살충제 계란파문으로 수요가 줄어 계란 값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폭염과 폭우로 배추, 상추 등 채솟 값은 치솟고 있어 추석 식탁물가를 걱정하는 소비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 3사의 배추는 1포기는 6000원에 육박했다. 이날 이마트의 배추(2kg 내외) 한포기 가격은 5980원으로 지난 7월 3980원보다 한달 사이 2000원(50%)이나 올랐다. 홈플러스도 한달 전 3990원이던 배추 한포기 값이 5490원으로 뛰었다. 롯데마트 역시 5490원에 판매됐다.
이날 백화점의 배추 한포기 가격은 1만 원 안팎으로 ‘금배추’를 실감나게 했다. 신세계백화점이 1만1500원, 롯데백화점은 8900원, 현대백화점은 7000~8000원이었다. 무(1500g)도 신세계백화점 3980~5500원, 롯데백화점 3500~4500원, 현대백화점 3000~3500원이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배추는 29일 기준으로 1포기에 평균 6800원이다. 비싼 곳은 8000원에 팔리고 있다. 이는 장마가 시작된 지난달 3일 1포기 평균 2356원에 비하면 포기당 170%나 오른 셈이다.
무는 지난달 3일 평균 1786원에서 현재 2883원으로 올랐으며 오이는 5593원에서 1만82원, 호박은 876원에서 2163원으로 두어달새 2~3배 가량 올랐다. 상추 역시 지난달 3일 100g에 639원에서 현재 1604원으로 2배 이상 올랐으며 양배추는 한포기 평균 2485원에서 현재는 4747원이다. 또 시금치(1㎏)는 같은 기간 4506원에서 1만4688원으로 3배 이상 뛰어올랐다.
이 같은 현상은 7월에 이어 8월까지 이어진 많은 비가 채소 생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채소류의 주 출하지인 강원지역의 경우 작물 피해가 심각했다. 강원지방기상청에 따르면 강원 양양지역은 이날까지 지난 1~5일, 8일, 12일, 22일을 제외한 날에 비가 내렸다. 유통공사 관계자는 “배추, 무 등 채소류의 경우 주 출하지인 강원지역의 강우 피해로 생산량이 감소해 전년에 비해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때 1만원 때까지 치솟으며 ‘금란’으로 불렸던 계란은 한판 가격이 5000원 대로 떨어졌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품귀 현상을 겪다 확 꺽인 것이다. 대형마트 판매 계란 가격이 30알 한판 기준 6000원 대가 깨진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28일 청주시 상당구의 한 농협 하나로마트에서는 30개들이 계란 한 판 가격이 4950원으로 5000원대가 깨졌다.
대형마트 3사의 계란 매출은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30∼40%나 급감한 뒤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16~26일 이마트의 계란 매출은 살충제 성분 검출 발표 직전인 2~12일 대비 44.2% 줄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의 계란 매출도 35% 감소했다.
이형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축산관측팀장은 “살충제 여파로 인한 소비 불안 심리가 일정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면서도 “통상적으로 추석을 앞두고 식자재 물가가 오르는 만큼 계란 가격이 소폭 반등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소비자들은 먹거리 안전 불신과 함께 당장 다가올 추석 물가 불안정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전업주부 백 모(57) 씨는 “살충제 계란 뿐만 아니라 E형감염 가공육 등 연이어 터지는 식품 안전 문제 때문에 맘 놓고 장보기가 어렵다”며 “올 추석은 채솟값과 과일값이 올라 풍족한 명절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