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랩의 내부 목표는 실패율 90%에 도전하는 것이다. 10명이 도전해서 9명이 실패할 만한 획기적이고 어려운 과제를 발굴하자는 취지에서다.”
삼성전자의 C랩은 삼성전자의 창의적 조직문화 확산과 임직원의 사업 아이디어 발굴·지원을 위해 도입된 사내 벤처 프로그램이다. 2012년 도입돼 만 5년이 됐다.
출범 5년째를 맞은 후 가장 달라진 점은 많은 직원이 아이디어 제공자로 거듭났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C랩 참가 신청 임직원은 매해 늘어 지난해엔 2000명을 넘어섰다. 각 팀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사내 ‘C랩 페어(C-Lab fair)’에는 68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또 다수의 C랩 프로젝트가 각종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위상도 달라졌다.
C랩의 탄생은 새로운 업무 방식의 시발점이다. 기존 삼성전자 조직은 집중력과 강력한 리더십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시장 판도를 바꿀 혁신성이 필요해졌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기존 조직에 소규모 스타트업이 가진 장점인 △신속한 실행력 △실패 장려 △도전 정신을 더하는 ‘하이브리드 혁신’ 구조를 택했다.
C랩의 제도적 특징은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계층 구조 없이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업무를 보는 ‘홀라크라시(Holacracy)’ 개념을 도입해 단순한 조직 구조 내에서 리더가 프로젝트 구성원에게 권력을 분배한다. 아이디어를 제시한 팀원이 자신의 팀을 지위하고 외부 인력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C랩은 올 7월까지 누적 180개 과제가 추진됐다. 참여 임직원은 총 750명 규모로, 2020년까지는 연구개발(R&D)의 1%까지 C랩과제로 채우자는 것이 목표다. 완료된 136개 과제 중 스핀오프 된 과제는 25개, 단순완료된 과제는 40개, 드롭된 과제는 8개, 사내에 활용된 과제는 63개다. 완료 과제 중 64%가 사업화됐다.
C랩의 업무 절차는 총 5단계로 이뤄진다. 첫 단계는 ‘아이디어 발굴’이며 이후 팀구성과 멘토링이 이뤄지는 ‘콘셉트 개발’을 거쳐 ‘프로토타입 개발·증명’ 단계로 이어진다. 각 팀은 자신들이 제작한 작품을 글로벌 전시회에 선보인 후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출구’ 단계로 넘어가 삼성전자 내에 남거나(인하우스 이관) 혹은 분사(스핀오프) 하게 된다.
과제 유형은 다양하다. 교육·사회공헌·아동·교통·보안 등의 주제 외에 삼성전자 제품을 새롭게 고찰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요즘에는 트렌드를 반영한 사물인터넷(IoT)·헬스케어·VR·AR·빅데이터 등의 주제가 제안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C랩 팀이 개발한 시각장애인들의 시각 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공개했다. ‘릴루미노’는 기어 VR에 장착된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영상을 변환 처리해 시각장애인이 인식하기 쉬운 형태로 바꿔준다. C랩 과제가 원칙적으로 1년 후 종료되는 데 비해 ‘릴루미노’는 이례적으로 1년 더 후속 과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릴루미노’ 팀은 VR에서 더 발전된 안경 형태의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릴루미노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 다른 과제들은 통상 1년을 수행기간으로 설정한다. 삼성전자는 스타트업으로 독립된 과제에 적게는 5억 원에서 최대 10억 원에 달하는 창업지원금과 투자금을 집행한다. 독립한 스타트업에 대한 삼성전자의 지분은 20∼25%가량 된다. C랩에서 개발한 기술 라이선스는 삼성전자가 가지고, 이를 스타트업에 유상으로 대여한다. 이런 식으로 사업화된 과제 외에 나머지 과제를 수행한 임직원은 연구를 집행하고서 기존 부서로 복귀한다. 복귀하고 나서도 인사상 불이익은 전혀 없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장 상무는 “직원들이 창업한 회사들이 성공하게 되면 삼성전자로서는 우군 세력을 확보하는 것과 같다”며 “삼성전자가 스핀오프한 회사를 다시 고비용으로 되살 수 있을 정도로 키워 나가는 것이 C랩의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