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는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과 참여 누적인원 1700만 명의 촛불집회를 통해 탄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준 국민이 정부와 정치권에게 요청하는 것은 단순하다. 책임, 소통, 비전이다.
촛불이 바랐던 책임, 소통, 비전은 단순히 청와대의 구성이나 내각의 인선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서 기존의 성장전략이 가지고 있던 한계들의 축적을 청산하고 갖가지 난제를 해결할 철학을 사유하고 전략을 실행하자는 것이 그 핵심이다.
예를 들면, 사회를 시장으로만 바라보는 기업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을 환기하는 것이다. 기업과 사회가 동반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고착되고 있는 빈곤과 저성장의 악순환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이는 기업에게 새로운 경영 전략을 요구한다. 사회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이 과정에서 기업이 놓여 있는 생산과 유통의 생태계를 윤리적이며 친환경적인 형태로 조정해야 하다. 이는 성장의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집중하자는 의미이다.
소통은 질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나 체계적인 홍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통의 대전제는 투명성이다. 기업은 소비자와 주주에게, 정부는 국민에게, 비영리조직은 후원자와 시민사회에게 충분한 수준의 투명성을 유지해야 한다. 조직의 활동과 이 활동이 낳은 결과와 그 영향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이 정확하게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제공하고, 이를 통해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전은 책임과 소통의 전제 위에서 의미가 생긴다. 한정된 자원과 부족한 시간, 불리한 대외여건과 알 수 없는 미래를 헤치고 나가는 힘은 비전에서 생긴다. 책임 없는 비전은 승자 독식의 뒷맛을 남기고 소통 없는 비전은 불신의 나선을 낳을 뿐이다. 결국 협력은 힘을 잃고, 비전은 붕괴된다. 이런 비전 체계는 동원 체제에 다름 아니다. 이제 국가는 동원되지 않는다.
특히 산업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야 한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스캔들은 대부분 기업에서 촉발되었다. 대통령 탄핵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문제였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 억울함이 있을 수도 있다. 작은 가게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국부를 형성하며 고용을 창출하고 성장하기까지, 그 지난했던 시간들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국민들도 그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노동자로, 소비자로, 주주로, 협력업체의 직원으로 함께 그 시간을 견뎌왔다. 이제 해외에서 보여주는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도 보여준다면, 그래서 그 윤리성과 책임의식을 의심받지 않게 된다면 기업은 사랑받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사실 새로운 시대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며 포용적인, 그래서 지극히 상식적이며 친숙한 무엇일 가능성이 크다. 경제위기, 안보위기,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4차 산업혁명... 이미 익숙해진 위기의 징후들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내는, 그 지혜와 결단이 지금 필요하다.
고대권 코스리(한국SR전략연구소) 본부장 accrea@kosri.com